엘리멘탈은 대단히 창의적인 표현력을 가진 영화다.
물, 불, 바람, 흙 4개의 원소가 살고있는 엘리멘트 시티라는 설정은 어찌보면 새롭고 어떻게 보면 좀 식상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막상 영화에서 엘리멘트 시티를 그리는 방식을 보면 대단히 창의적인 영화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엘리만탈의 좋은 장면들은 대부분 원소의 특징을 창의적으로 발현한 부분들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양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큰 문제는 그 장면들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멘탈의 이야기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한국의 관객에겐 특히나 익숙하다.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과 꿈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야기. 엘리멘탈의 감독 피터 손은 이민자 2세라는 본인의 정체성을 작품에 투영하여 스토리에 굉장히 많이 반영했다.
문제는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엘리멘트 시티라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지만 그 활용은 현실을 은유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이 영화의 배경이 엘리멘트 시티가 아니고 미국 어느 도시에서 아시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바꿔도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라든지 현실에서 가져온 설정들이 많은데 그것들이 전혀 융화되지 못하고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를테면 앰버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물을 싫어하는가? 할머니는 왜 불끼리 결혼하라고 하는가? 엄마가 점을 보는 이유는 뭐야? 불은 왜 모여살아? 그 답은 '현실에서 그런 일들이 있었다'가 되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멘탈 안에서 나와야한다. 관객들이 불을 동양인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가 계속해서 그 생각을 유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
또 앰버가 세계적인 유리공예 기업 인턴으로 꿈을 찾아간다는 결말의 연출도 굉장히 안일하다. 이것 또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투영된 것 같은데 개인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것은 납득할만하지만 창작물에서 이렇게 투박하게 다루는건 좋지않다고 생각한다. 서비스업이나 자영업은 대기업 직원보다 아래 단계의 일이 아니다. 감독은 본인이 꿈꾸는 일과 부모님께 권유받은 일로 정의했을지 모르나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배경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잡화점을 물려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앰버의 모습이 작품 전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결말 부분에서 갑자기 사실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본인의 꿈이 아니었다니 이게 무슨? 그런 식으로 그려버리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가스라이팅했다는 말밖에 더되나? 엔딩을 보면 알겠지만 아버지는 고집불통으로 가업을 이어받기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정말 섬세하지 못한 각본과 연출.
내 생각엔 앰버가 파이어타운을 벗어나 살아가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고, 연로하신 아버지께서 얼른 은퇴하기를 바랬기에 열심히 일하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근데 인턴 제안을 받게되니 좋은 기회라는 걸 알면서도 가족들과 살아온 삶들이 영영 끝나는 게 아닌가 무섭다. ~~ 식으로 고민하고 선택했어도 충분했다고 본다. 내가 적은 이야기도 결코 창의적이진 않다. 결국은 같은 내용이지만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엘리멘탈의 투박한 연출은 서비스업과 자영업을 하는 사람에겐 굉장히 무례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피터 손 감독님에겐 아주아주 잊지못할 영화이겠지만 내 생각엔 그런 개인적인 부분들을 최대한 숨기기위해 노력했더라면 영화가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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