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정은 임지호 셰프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임지호 셰프는 독자적인 요리 세계를 구축하며 상당히 인정받고 성공한 셰프임에도 불구하고 밥정은 그의 커리어에 그다지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이 작품이 관심 있는 것은 셰프로서의 임지호보다 인간 임지호에 가깝다. 기이한 가정사를 갖고 있는 임지호 셰프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큰 듯 보였다.
자연에서 식재료를 얻는 그의 요리 철학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떠돌며 자라온 그를 돌아보도록 만든다. 어느새 그의 머리는 희끗해졌지만 여전히 자연을 한발 한발 딛으며 식재료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어르신은 모두가 그에겐 어머니이자 아버지에 다름없다.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드리고, 한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그는 부모와 자식의 연을 압축적으로 수행하고 떠난다.
그런 과정에서 제 3의 어머니로 연을 맺게 된 분이 있었으니 바로 김순규 할머니이다. 영화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나오지 않지만 보도자료에 따르면 10년 이상의 기간을 알고 지낸 듯하다. 물론 거리가 거리다보니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겠지만.
다들 비슷하게 느끼겠지만 영화 속 김순규 할머니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 어르신들을 대하는 임지호 셰프의 마음 또한 참 따스해 괜시리 밥정이라는 단어를 한번 더 되새기게 된다.
영화가 인상적이어서 검색하던 중, 김순규 할머니와 관련된 다큐멘터리가 한 편 더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부야 나부야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던걸까 궁금했다. 밥정을 연출한 박혜령 감독은 임지호 셰프와 인간극장을 시작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연을 쌓은 것 같고, 김순규 할머니 또한 KBS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것으로 보이니 아마 밥정과 나부야 나부야 감독님이 서로 아는 사이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김순규 할머님 댁에 방문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 감독님이었으려나? 시간상으로는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부야 나부야를 통해 알게된 것은 이종수, 김순규 부부가 돌아가신 것이 대략 2017년 전후라는 것. 그러니까 밥정에서 108제를 올린 것도 사실은 영화가 개봉하기 몇 년 전이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밥정에서 처음 김순규 할머니와 임지호 셰프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할머니가 그래도 밭에도 가고 하시는데 나부야 나부야를 보면 거의 방을 나가시지 못한다. 그러니 밥정은 아마 생각보다 훨씬 제작기간이 길었던 것으로 보인다.
뭐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호기심에 퍼즐을 맞춰보았다 ㅋㅋ
나부야 나부야는 사실 그리 좋은 작품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거동이 많이 불편하셨기 때문에 일상도 더욱 단조로우셨을테고 제작비가 적으니 분량도 섣불리 늘리기 어려웠을지도.
임지호 셰프하면 예전에 SBS 식사하셨어요?에서 요리를 해주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그 프로를 애청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 재밌게 시청했는데, 당시엔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의 재료를 활용하여 요리를 하는 임지호 셰프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후, 프로그램은 폐지되고, 자연히 잊고 살다가 별안간 들었던 별세 속이 얼마나 안타깝던지. 밥정을 보고 인터뷰를 찾아보니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7권에 달하는 요리책도 발간할 계획이셨다는데 애석하게도 빛을 본 것은 겨우 1권 뿐이다.
밥정은 참 따스한 영화였지만 화면 속 세분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할 적이면 어쩔 수 없이 마음 한 구석에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 (0) | 2023.06.27 |
---|---|
엘리멘탈(2023) - 세계관 내부의 원리보다 외부의 사건의 영향력이 더 커질 때의 문제 (0) | 2023.06.26 |
길복순(2023) (0) | 2023.06.02 |
슈퍼마리오 브라더스(2023) - 영화와 게임의 선순환 (0) | 2023.04.27 |
거울 속 외딴성 - 좋은 작품인데 상영하는 곳이 없어 (0) | 202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