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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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장편소설 불멸의 서문을 보면 안중근이 조명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를 기록하려는 의의를 가지고 서술한 소설이라는 말이 적혀있다. 그러나 10년 사이 상황은 많이 바뀐 듯하다. 영웅이라는 뮤지컬은 영화로까지 제작되었고, 하얼빈이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김훈은 소설을 썼고, 우민호는 영화를 만들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이 제작되는건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어찌 이리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여전히 답은 알 수 없지만 김훈과 이문열이라는 두 명의 원로 작가가 같은 인물을 소설로 썼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두 책을 함께 읽어보았다. 

다만, 이문열 소설의 경우 2010년 발간한 불멸이라는 제목의 민음사 판본을 읽었다. 당시 구입하고 완독까지 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기에 다시 읽었다. 

 

처음부터 두 책을 비교해보려던건 아니고, 하얼빈을 읽고나자 불멸에 관해서도 호기심이 생겨 읽은 것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잘못된 순서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300 페이지 가량의 하얼빈은 안중근의 생애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가기 전후의 짧은 순간을 압축적으로 다룬다. 반면 이문열의 불멸은 8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안중근의 생애 전반을 다룬다. 하얼빈을 읽고 불멸을 읽으려니 분량 차이 때문에 까먹는 것도 있지만 사실 너무 지루했다. -_-;; 그건 서술방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한데, 김훈은 굉장히 문장을 어렵게 쓰는 듯 하지만 사실은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고 압축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 이문열은 독자가 읽고 소화도 못 시킬 정보들을 잔뜩 쓰고 있는데 아마도 서문에 쓴 것처럼 이 소설이 안중근에 관한 하나의 자료로 기능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이건 하얼빈을 읽고 나니 더 극명하게 대비가 되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몇몇 부분들은 소설인데 이렇게까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출판사를 옮기고 제목을 바꾸면서 표지에 안중근 평전이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이건 아주 적절하고도 좋은 선택이라고 여겨졌다. 개념적으로 소설이면서 평전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비전공자인 나로선 헷갈리는 일이지만 소설이면서 평전이라고 달아두어야 이 책을 읽고 실망하는 일이 없을 듯.

 

흥미로운 것은 두 책 모두 사냥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하얼빈에서는 멈춰있는 사슴을 사냥하고, 불멸에서는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사냥한다. 멈춰있는 사슴을 사냥하는 모습에서 안중근의 심성을 느낄 수 있다면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잡는 모습은 장차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처럼 느껴진다. 

 

두 책이 그리는 안중근의 성격도 다른데 하얼빈은 지나칠정도로 고지식하고 정도를 걸으려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불멸에서도 그런 에피소드들이 없는건 아니나 이문열이 그렇게 본 것 같지는 않고, 전반적으로는 가벼운 측면도 있고 허술하고 호기로운 면모도 많이 그리고 있다. 불멸에서는 안중근이라는 사람의 성격에 일관성을 가지고 그린다기보다는 그 때 그 때 에피소드에 맞춰서 해석되는데 작가의 사견이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찌본다면 인간의 성격이란 것이 그리 쉽게 유형화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것도 일리가 있는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불멸 1권은 사실상 안태훈(안중근의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안태훈의 비중이 높게 그려진다. 하얼빈의 시작이 불멸 2권과 얼추 시기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하얼빈의 핵심적인 부분들이 불멸에서는 2권 후반부 정도로 다뤄진다고 보면 된다. 

 

두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래도 어느 시점에 이르면 두 책의 내용이 상당부분 겹쳐서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다 읽고나니 두 책이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부사항들이 다르다. 하얼빈은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듯이 필요에 따라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기도 하고 단지동맹처럼 굵직한 사건을 생략하기도 했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렇게 현격히 다를 줄이야.. 

 

그렇기에 두 소설을 일일이 문장 하나하나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얘기했듯, 불멸은 평전으로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까마귀를 사냥하는 장면처럼 허구적 상상력에서 장면이 나오는 듯하지만 조금만 지나도 그런 장면은 찾아보기가 어렵고, 이런 일이 정말로 있었어? 싶은 장면엔 어김없이 화자가 직접 등장해 어떤 출처에서 이러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신빙성은 의심스럽다는 말을 할 정도니.. 사실상 출처없이 이문열 임의적으로 적어놓은 장면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그렇기에 불멸은 작가가 문학적 역량을 발휘하여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안중근의 행동을 따라가면서 퍼즐을 맞춰나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반면 하얼빈은 안중근의 마음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행동은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마음의 퍼즐을 맞추고 있다. 하얼빈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종교적인 의미가 불멸에서는 훨씬 약해지는 것이 그 이유다. 불멸 1권에서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된 이유를 그토록 상세하게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이 본격적인 민족운동을 서술하다보니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읽고나니 알게된 것이지만 사실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장르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민음사의 판본을 들고 있었던 나로선 읽기 전까진 그걸 알 수 없을뿐.. 뒤늦게라도 평전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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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