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의 등단 12년 만의 장편소설.
책 사는걸 자제하려하는데도 이 책을 산 이유는 백수린 작가는 확실히 소설 잘쓰는 작가라고 생각해서였다.
<줄거리>
대략 마흔 언저리의 나이인 주인공 해미는 10대 시절 엄마를 따라 독일에서 몇 년을 보낸 경험이 있다. 해미는 독일에서 친하게 지내던 레나, 한수와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를 시작하게 된다. 예상치 못하게 해미가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일종의 놀이처럼 시작했던 일이 해미만이 해낼 수 있는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 해미는 불연듯 레나, 한수와 연락을 끊으며 독일 시절을 외면한 채 살아가다 문득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였던 우재를 만나며 다시금 독일 시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해미는 과연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었을까?
초반에 보면 주인공이 언니를 가스 폭발 사고로 잃은 설정이 나오는데
마치 조건반사처럼 세월호를 떠올려버렸다.
사건사고로 가족을 잃는건 세월호가 아니더라도 숱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유사점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이렇게 떠오르는건 어쩔 수 없는 후유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을 다 읽고 느낀건 구조적으로 너무나 훌륭한 소설이라는 것..
마치 잘 쓴 영화 시나리오를 읽은 기분이랄까.
한편으로는 백수린의 단편을 붙여 만든 장편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게 꼭 나쁜건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엔 작가님은 단편에서도 좋은 구조를 가진 단편을 쓰는 편인것 같고, 그 장점이 장편에서도 고스란히 살아난 것이니까.
선자 이모와 해미는 당연히 겹친다. K.H를 쫓는 과정은 해미의 첫사랑 한수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결국 외면했던 독일 시절을 성인이 되고 다시 제대로 들여다보고 K.H를 찾는 것은 해미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해미의 거짓말이 다른 사람을 구원해주고, 또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일이 스스로를 구원해준 것처럼 결국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과 만나게 되어있다. 그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다정함을 잃지 않아야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소설이 우리에게 하는건 이처럼 단순하면서 눈부신 안부를 전하는 것이겠지. 물론 이렇게 없어보이게 직설적으로 말하진 않겠지만..ㅋㅋ
개인적으로 한국소설이 좀 지겨웠던건 여성서사니 퀴어니.. 소설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이 품고 있는 제재에만 신경쓰는 굉장히 저차원적인 마케팅이 성행하는 것이 크게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백수린의 소설은 근래 한국소설 중 가장 훌륭한 여성 서사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엽적인 키워드로 소설의 잠재력을 죽여버리는 일을 하지 않아서 굉장히 다행이었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여전히 한국문학은 희망이 있구나 싶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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