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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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을 한편의 영화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은 영화가 아닌 영화관과 인생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무수히 많은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과 단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하는 영화. 떼려야 뗄 수 없는 둘 사이에서 어째서 영화가 아닌 영화관이라는 제목을 붙였을지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이 책은 엄마를 잃은 한 아이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알록달록한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앉아 저마다 지저귀는 형형색색의 새들을 지나 아이가 도착하는 곳은 영화관이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가 데려다주었던 곳. 오직 빛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개개인의 개성 있는 색들조차 스크린에서 반사되는 빛깔로 변하는 곳. 엄마를 그리워하던 아이는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색을 비추는 영사기의 강렬한 빛에 매혹되어 버린다. 아이가 영화관에 반해버린 건 어쩌면 그 안에서 자신은 모르는 엄마의 색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색을 수집하며 성장하던 아이는 결국 어른이 되어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건 단순하게 엄마의 색을 찾는 것 이상의 엄마의 색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녀는 영화를 만드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그녀의 영화가 아니었다. 한 편의 영화에 정답은 들어있지 않았고, 우리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없었다.

 

긴 어둠의 터널 끝에서 영화를 좋아하던 아이는 또 하나의 아이와 만난다. 자신이 어린 시절 엄마를 그리워했듯 마찬가지로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 두 아이는 그리운 마음을 담아 함께 영화관에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영화관에서 뜻밖의 빛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빛의 진원은 영사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 그녀가 본 것은 어쩌면 한 줄기의 무지개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일상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색들의 스펙트럼일 수도 있고, 그녀가 보았던 수많은 영화가 가진 색들의 모자이크 일 수도 있다.

 

미지의 빛과의 조우를 마친 그녀는 여전히 영화관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가 영화관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상대가 누구든 영화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역시도 한때 영화에 깊이 빠져있었던 사람으로서 이 책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삶을 배우고, 또 삶을 살아가며 영화를 배운다. 영화에도 삶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영화를 보고, 삶을 살아간다. 그 지난하고도 외로운 여정 속에서 <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은 우리 모두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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