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롤 오츠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빨간 책방에서 다뤘던 <그들>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수 년 전.. 중고책방에서 우연히 그들을 발견하고 사왔던 것도 1년은 더 되었고.. 미루고 미루다 그들을 읽기 시작했던 것도 대략 3~4개월 되었는데 드디어 다 읽고 빨간 책방까지 들었다. 종영된지 몇 년이 지난 팟캐스트를 아직도 듣고 있는 나란 사람..ㅋㅋ
솔직히 얘기하자면 빨간책방 <그들>편은 작품의 이해도를 올려주는 타입의 방송은 아니었다. 작품이 워낙 복잡한 작품이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조금은 다루기 어려운 유형의 책이기도 했을 것이다.
방송에서 계속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재밌는 책이다라는 것인데.. 물론 책을 안읽고 듣는 청취자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춰주기 위해서 또 실제로 이 책이 꽤나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에서 이해는 되지만 나의 경우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다. 일단은 분량이 굉장히 많은 책이고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사건 전개 위주로 흘러가는 것은 전체의 20%는 되려나?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책은 아니라는 점을 일단 짚고싶다.
그들이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의 플롯이 우리가 익숙한 플롯이 아니라는 점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다. 1인칭 시점이든 3인칭 시점이든 시점이 번갈아서 서술되건 간에 이 책은 처음부터 주인공에 포커싱되어 서술하는 책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관점에서는 주인공이 없다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보편적인 관점에서 줄스와 모린이 주인공이라고 보았을 때는 로레타의 어린 시절부터 한참을 로레타에 관해 서술하는 이 책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들>의 구조를 돌아보았을 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긴한데, 아무 정보 없이 책을 읽었던 나의 경험으로는 처음에 주인고이었던 로레타가 어느 순간 배경인물로 밀려나는 것이 조금은 어리둥절한 부분이 있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어떻게보면 조금은 사전정보가 있는 상태로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책이다. 그러니 읽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간 책방을 듣고 읽자.
내가 책보다 영화를 훨씬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적당한 길이에서 짜임새 있고 완결성 있는 플롯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같은? 뭐 나만 그런게 아닐 것이다. 관객 혹은 독자의 입장에서 소화하기 쉬우니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러다 이제 가끔 <그들>같은 작품을 읽게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전혀 익숙하지는 않다. 내가 좀 더 특별히 이 책을 읽기 어려웠던 것중에 하나도 이 책을 일반적인 플롯으로 접근했던 탓이 크다.
솔직히 말하면 다 읽고나서도 이런 플롯이 대단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참 하긴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가끔씩은 평범한 플롯 안에서 풀기 힘든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고, <그들>이 그리고자 하는 건 어떤 특정한 인물이 하나의 갈등 혹은 사건을 겪는 것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의 시간들 혹은 어느 가족이 디트로이트라는 배경에서 견뎌야했던 것들과 그 주변의 풍경들이었기에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이 대단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방법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생각이 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라는 이 책의 서문에 관한 것인데 나 역시 그걸 굳건히 믿고 책을 읽었는데 책의 마지막에 있는 발문을 읽어보면 서문 역시 픽션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작가의 잔재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재는 모린이 전업주부로 잘 살고 있다는 서문의 끝부분을 머릿속으로 상기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는 점에서 묘한 효과를 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들>을 읽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나의 독서 경험을 넓혀주었다. 이제 나는 <그들>보다 더 긴 <블론드>를 읽으러 떠나려 한다. 두렵고도 설레는 길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글쓰기 십계명
1. 가슴으로 써라
2. 첫 문장은 마지막을 쓴 다음에나 쓸 수 있다. 초고는 지옥이다. 완고는 낙원이다.
3. 후대인이 아닌 동시대인을 위해 써라. 운이 좋다면 동시대인이 후대인이 될 것이다.
-박찬욱의 예시 : 작품에 유머를 넣게 될 경우 5년만 지나도 그게 낡아보이는 경우가 있어서 잘 안넣게 됨
-김중혁 작가의 경우 - 특정 노래나 특정 상표 같은걸 피하는 편
4.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염두에 둬라
'조금 진지하면 위험하다 대단히 진지하면 치명적이다'
5. 한 챕터를 어떻게 끝낼 지 모르겠다면 총든 남자를 등장시켜라.
6.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면 단락을 나눌 가능성을 염두에둬라
7. 당신 자신의 평론가, 편집자가 되라. 공감하면서도 잔인하라.
8. 이상적 독자를 기대하지마라 아니 아예 독자를 기대하지마라. 독자가 있긴하겠지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9. 열심히 읽고 관찰하고 들어라 마치 당신의 삶이 거기 달려있는 것처럼.
10. 가슴으로 써라
+체면치레하지말고 널리 읽어라
+글을 쓰기 위해 인생을 살지 말라
+이상주의자가 되거나 낭만에 차서 열망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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