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롤 오츠의 장편 소설 블론드.
알려진 바로는 <그들>과 함께 조이스 캐롤 오츠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블론드를 꼽았다고..
두 소설의 공통점은 굉장히 길다(...)
<그들>만 해도 700페이지가 넘지만 블론드는 복복서가판으로 그 2배에 해당하는 페이지다...ㅋㅋ
물론 복복서가에서 나온 판형이 조금 작은지라 실제 글자수로 따지면 2배까지 안될거 같기도?
여하튼 두 소설을 모두 읽어본 바 느껴지는 조금의 공통점이 있는데,
기승전결이 타이트하게 짜여진 소설이 아니라는 점,
마치 인간극장처럼 5부작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그만큼 하나의 시퀀스가 기능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설 속 인물에게 있었던 일이므로 그려지는 느낌이 크다.
(물론 수많은 사건들의 생략이 있었기에 아무런 기준없이 서술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방대한 분량의 소설로 완성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아! 이것이 진정한 장편소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비슷한 분량의 다른 소설을 이전에 분명히 읽은 적이 있고,
분량의 특성상 그 소설들도 뚜렷한 기승전결을 따라서 흐르지만은 않았을터인데
어째서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에만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인지는 나도 뚜렷한 답을 찾기가 쉽지않다.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다.
마릴린 먼로의 일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기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으나
영화로 만들어진 블론드의 논란을 생각하면 이 분류를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전기소설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늬앙스를 비전공자인 내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지니는 성격을 생각해보면 전기소설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은 비교적 마릴린 먼로의 전 생애를 비교적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노마 진이라는 한 여성을 지칭했던 수많은 이름들의 변천사가 이 소설의 핵심 모티브였기 때문에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불안정한 어머니에게 자랐던 노마 진은 짧은 생애동안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마릴린 먼로가 된 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후 그녀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노마 진인 자신의 본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을 끝없이 찾는다.
그녀가 마릴린 먼로라는 껍데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에는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자랐던 것이 큰 요인이겠으나 한편으로는 하나의 작품을 맡을 때마다 메쏘드 연기를 펼쳤던 그녀의 연기방식에도 원인이 있을 것 같다. 몇 개월이나 되는 촬영 기간 동안 자신을 배역과 동일시하며 (특히 그 배역이란 것이 대부분 그녀가 가장 힘든 상태에서 찍었던 달력 모델 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을 갖고 있다)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촬영이 끝난 후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마릴린 먼로라는 배역으로 스스로를 연기해야 한다. 그녀를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녀는 마릴린 먼로가 아닌 노마 진으로 자신을 대해 줄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 뿐이고, 배우자를 대디라고 부르며 노마 진으로 자신을 인지해줄 것을 끝없이 애원하지만 그녀 마음 속 불안은 그리 쉽게 해소되지 않고 의심은 끝없이 싹트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인 블론드는 그녀가 영화 촬영지에서 불렸던, 노마 진도 아닌 마릴린 먼로도 아닌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녀의 죽음은 그녀를 블론드의 대명사로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짧은 생에서 그녀는 결국 어떠한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는 생각 또한 들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블론드를 둘러싼 고인 모독 논란에 대해 원작 소설에도 같은 화살을 겨눠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와는 다르게 이 소설은 마릴린 먼로에게 깊은 애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소설이기에 당연히 실제 그녀의 삶과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영화처럼 악의적으로 가십이 될만한 부분만을 발췌하지 않았다. 성적으로 자극적인 묘사가 있고, 이에 대해 캐스 채플린이 사실과 다르다며 인터뷰도 하였지만 어쨌거나 소설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들과 어울렸던 것이 충분히 설명이 되고 납득이 된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의 생애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굉장히 많다. 그녀 또한 스스로의 과거에 대해 엇갈린 말을 한 적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오늘날에도 그녀의 삶은 비교적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물론 이건 블론드라는 소설에 문제가 없냐는 질문을 할 때 전혀 관련이 없는 사항일 수도 있겠지만, 애시당초 마릴린 먼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지극히 팩트에 기반한 전기물이라는 건 있기가 어렵고 창작자의 해석과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블론드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범주 안에서 쓰여진 소설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전혀 논란거리도 아닌데 길게 주저리주저리 쓴 것 같지만 -_-;
어쨌거나 블론드를 읽으면서 마릴린 먼로가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많이 생각해보면서 읽었다.
그리고 전혀 비슷한 점도 없으면서도,, 나를 많이 대입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그들>에 비해 훨씬 감정적으로 푹 젖어서 읽었던 소설이었다.
영화는 비추천이지만 소설은 적극 추천한다. 길지만 한 번 쯤 도전해볼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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