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을 쓰진 않았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를 먼저 읽고 너는 모른다를 바로 이어서 읽었다.
두 책 다 누나가 산 책이었는데, 아마도 달콤한 나의 도시를 읽고 재밌어서 정이현 작가의 다음 작품도 구입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이 책은 달콤한 나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색의 책이었으니 책을 읽고 꽤나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다 안읽었을지도..
너는 모른다는 정말 공들여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공들인만큼의 결과가 나온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건 형식에 관한 부분이다.
이 작품은 3인칭으로써 서술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바꿔가며 진행하는 작품이다. 처음 시작되면 하나의 챕터를 하나의 인물이 책임지는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처음 몇 챕터를 제외하고서는 수시로 중심 인물을 바꿔가며 서술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중심인물을 바꿔가며 서술하는 방식의 가장 큰 이점은 어떤 정보를 어떻게 공개할지 정하기 편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미스터리적 성격이 있는 너는 모른다의 경우 이 방식을 택한 것이 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소설의 내용과 어울리는 형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 마다 그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주기보다 오히려 감추어 놓는 편인데, 인물에 대한 정보가 조금 쌓일만하면 중심 인물이 바껴서 크게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또 다른 이유는 너는 모른다가 아이의 실종과 관련된 긴장감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도입부분에 사체를 등장시키며 미스테리를 강화하려고 하지만 인물들이 하나같이 순하고, 그래서인지 용의자를 의심하는 부분이 너무 순진해서 긴장감같은건 딱히 형성되지 않았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볼륨도 꽤 있는편이지만 다 읽고 다시 생각해보면 굉장히 작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이 적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이 미스테리가 전부인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는 옥영과 밍의 사랑이야기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싀테리가 살았다면 소설이 더 좋았겠지만)
오늘 그 남자만이 아니었다. 옥영 역시 언제나 높낮이 없는 말투를 사용했다. 가장 편안하게 농담할 때조차 왠지 모르게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누나는 "재수없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그런 게 하나도 안 드러나잖아. 겉으론 웃어도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게 뭐야?" 라면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누나나 아버지처럼 무언가가 머리에 떠오르는 즉시 입밖으로 토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부류들에게는 말이다.
그러나 혜성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 세상엔, 하고자 하는 말이 있더라도 컴컴한 동굴 같은 머릿속에서 한번 점검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밖으로 뱉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래적인 외국인. 그건 역설적으로, 모국어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의미였다. 그 남자의 모국어와 옥영의 모국어가 같을 것이리라는, 아무런 근거없는 망상이 혜성을 덮었다.
어쩌면 이 소설의 핵심일지도 모르는 한 대목. 무척 인상적인 대목이다.
똑같이 한국어를 쓰더라도 그게 다른 언어일 수 있다는 것.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는 것.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쓰고 내가 그 언어에 맞춰 생활해 가야한다는 것. 나의 언어를 배우고 귀기울여 줄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
이 소설의 비극의 시발점은 여기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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