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독특한 형식이었다. 이전에도 인물별로 챕터를 나눈 소설들은 있었지만 일정한 분량을 번갈아 가며 두 인물을 그리는 소설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1, 2권은 챕터 수까지 같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형식에 관한 작가의 야심이 느껴져 무척 흥미로웠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이 책의 형식은 줄곧 흥미로웠다. 3권의 분량을 합치면 20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자랑 1Q84는 1권은 무척 재밌지만 2, 3권은 1권만큼 재밌지는 않은 것 같다. 어째서 1권이 유독 재밌는 걸까... 아마 형식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챕터로 분리된 1Q84는 두 사람이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두 사람의 세계는 완전히 차단되어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인다.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2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따로 떨어진 것처럼 느꼈던 두 세계에 접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책을 읽을수록 접점은 점점 늘어나고, 어느 순간 두 개의 세계는 구분이 없어진 채 하나의 세계만 남게 된다. 1Q84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두 세계의 접점이 생기는 부분들이 힘을 받는 것은 형식이 내용과 맞고 또 그 형식을 활용하여 소설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웠던 2권을 지나 3권에 들어서면 또 한 번 새로운 형식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우시카와가 추가되어 3명의 인물이 번갈아가며 각자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이를 활용하여 세 인물의 타임라인을 조정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롭다.
1, 2권에서는 타임라인을 자세히 그리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렇기에 폭우가 내리는 밤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반면 3권에서는 한정적인 시간이 이야기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타임라인이 자세히 드러난다. 하루키는 이를 활용해 새로운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3개의 이야기(혹은 시점)를 병렬적으로 서술한다고 생각했을 때, 일반적인 방식은 2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동일한 시간을 3명의 시선으로 모두 보여주는 것, 또 하나는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인물의 시점을 바꾸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체로 전자의 방식을 사용하여 3권을 쓰고 있다. 세 사람의 타임라인에 큰 차이를 주지 않고 안정감을 주며 독자가 이 형식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 후 소설의 스릴러적 긴장감이 가장 정점에 달했을 때-우시카와, 아오마메, 덴고 세 인물이 거리상 가장 가까운 위치에 모였을 때-타임라인을 살짝 꼬아주며 독자가 느끼는 쾌감을 극대화한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이 소설의 형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1Q84의 집요한 형식들은 단순히 미스터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형식 자체가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의 세계에 자신을 고립시킨 채 살아가는 아오마메와 덴고. 20년 전 서로의 온기를 간직한 채 살아가던 두 사람은 리틀피플을 피해 재회하고 서로의 온기를 되찾는 데 성공한다.
조금은 과격하게 간추렸지만, 목차만 살펴보아도 두 챕터가 만난 마지막 챕터는 상당히 뭉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처음 목차를 보며 떠올렸던 형식에 대한 의문들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을 통해 완전하게 대답해 주었다. 1Q84는 물론 형식만이 중요한 소설은 아니겠지만 다른 소설에 비해 좀 더 신경 쓰며 읽어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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