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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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이 국내에 처음 출간된 2006년 나는 운좋게도 머니볼이라는 센세이션한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거의 예약구매에 가깝게 출간되자마자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가진 책을 보면 초판 3쇄본인데 1쇄본과 고작 2주일 밖에 차이가 안난다. 당시 꽤나 화제의 책이었다는걸 방증하는 부분. 하긴 나도 알고 살 정도였으니..) 


머니볼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기존의 야구상식을 뒤엎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책은 또 어찌나 재밌는지 단숨에 읽어치우고도 그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질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이 책에서 굉장한 선수로 묘사되는 유망주들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조금 실망했던 기억은 있다..ㅎㅎ


그사이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머니볼을 다시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꺼내 펼쳐보았다. 

사실 대부분의 논픽션 책들은 읽을 때는 정말 놀라운 사실들에 감탄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지만 대부분 몇 달이 지나면 까맣게 잊기 마련인데 머니볼의 경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책의 주요 내용이 다 떠오르는 책이었다. 그만큼 나에겐 충격적인 책이었던 셈이다. 


머니볼을 다시 읽으면서 느낀건 이 책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경영서적이라는 점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책의 내용에만 흥미진진하게 빨려들어갔기에 그냥 야구내용이 다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경영서적이었다. 다만 정말 재밌고 구성이 무척 좋으며 경영적인 측면에서 교훈을 설교하지 않는 저자의 화법때문에 그렇기 느껴지지 않는 것 뿐이다. 그것은 정말 훌륭한 부분이고 단지 이 책이 빌리빈의 오클랜드에 무임승차한 책이 아님을 정확하게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머니볼이 경영서적이라는 말이 의아하다면 머니볼의 집필의도를 한번 생각해보라. 머니볼이 세이버메트릭스 및 빌 제임스를 소개하기 위한 책인가? 아니다. 그건 빌리 빈이 오클랜드를 이끈 철학을 설명하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독자가 꼭 저자의 집필 의도대로 책을 받아들이란 법은 없다.) 


다음에 옮기는 부분들은 머니볼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 혹은 시간이 더 흘러 빌 제임스와 빌리 빈의 야구이론의 불완전성이 명확하게 입증되더라도 머니볼이 의미없는 책이 아닌 이유를 다음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인류의 삶에 영향을 끼쳤던 지성인들을 기억할 때마다 종종 물리학이나 정치학 또는 경제학과 같은 분야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존 케인즈가 간결한 표현으로 정의를 내렸던 '행동인'과 같은 개념을 떠올릴 때면, 이미 고인이 된 경제학자가 드리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개념이 우리의 사고를 인도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야구와 같은 경우는 이러한 지성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야구에서 지적인 토대를 찾기어렵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모두의 관심을 이끌 만한 매력적인 글로 야구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나 진지한 질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만 올바르게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행동인'이 경쟁 우위를 가질만한 진실을 밝혀주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빌리 빈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으로 취임하던 1997년 이전까지 그는 빌 제임스의 <야구 개요서> 열두 권을 모두 읽었다. 그는 제임스가 자신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그 책을 썼을 것이라 착각하기도 했다. 야구인들의 실수에 대한 모든 지적은 빌리 자신을 두고 한 말처럼 느껴졌다. 제임스는 빌리를 비롯하여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용기를 가진 구단주나 단장에게 반드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그 핵심은 '전통적 지식에 도전할 때 최소한 최근 거둔 성과보다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가 붓을 꺾고 난 다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 그의 지혜를 팀 전체의 이익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두 가지가 남아 있었다. 그 하나는 제임스가 개발한 지식, 즉 야구계 외부인인 분석가들의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현장에서 실행해보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 지식을 더욱 개발하고 확대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클랜드 에이스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택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제임스의 아이디어를 모방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엘리아스 사가 제임스의 <야구 개요서>를 표절할 때도 드러났듯이 그의 사고 자체를 모방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임스가 주장하는 바의 요체도 결국 '모방자'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것에는 의문이 생길 때마다 기존의 답변에 만족하거나 쉬운 해답을 예상하지 말고, 혼자 힘으로 합리적인 방향에 따라 사고하고 가설을 수립하고 증거를 찾아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유명한 야구인이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제임스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누구든 나를 모방하는 사람은 진실로 나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다시 읽은 김에 영화까지 다시 보았다. 

책이 그렇듯이 영화 역시 야구 소재의 경영영화 혹은 빌리 빈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흥미롭게 그린 드라마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해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가 처음 나왔을 당시 이 영화가 왜 그리 고평가를 받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는데 다시 책을 읽고 본 머니볼은 정말 너무나 훌륭한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가 정말 훌륭한 것은 빌리 빈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정말 지독하게 묘사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머니볼을 영화화할 때 어떤 요소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을텐데 이 영화의 경우 1순위가 빌리 빈의 내면묘사이고 2순위가 경영에 관한 이야기(변화, 즉 모방자가 되지말자) 3순위가 야구 영화로써의 매력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게 된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머니볼이라는 상업영화를 제작하면서 위와 같은 우선순위를 생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1순위 스포츠영화로써의 매력 2순위 경영이야기 3순위 빌리 빈의 내면묘사가 일반적인 순서 아닐까? 애초에 빌리 빈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이토록 심도깊게 다루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영화 작법에서 빌리 빈은 그저 남들이 못하는 생각을 하는 야구 천재로 그리면 끝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변화를 받아들인 사람의 마음이 어떤 지를 정확하게 묘사한다. 그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남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남들의 수많은 악평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꿋꿋히 지켜가는 과정임을 영화는 너무나 잘 보여준다. 


다른 부분도 너무나 탁월한 영화지만 역시 엔딩씬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02시즌 빌리 빈은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성공을 거두지만 플레이오프 탈락으로 결국 실패한 시즌이 되고 만다.(메이저리그를 비롯한 미국스포츠들은 그야말로 Winner takes it all 시스템이고 당연히 Winner는 한 팀 뿐이다.) 보스턴의 훌륭한 제안을 받은 그는 피터로부터 제레미 브라운의 영상을 받고, 자신의 딸에게는 노래 'The Show'를 받는다. 

운전하는 상황이기에 화면은 자연히 덜컹거리고 딸아이의 아름다운 음색이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카메라는 점점 클로즈업하다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이 화면을 다 채울무렵 그의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담는다.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어째서 과거의 나는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다시보는 머니볼의 엔딩씬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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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