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무(릴리 프랭키)는 문자 그대로 좀도둑이다. 도둑질이 본업도 아닐뿐더러 생계를 해결하는 주요 수단도 아니다. 그들이 도둑질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독특한데, 우선 도둑질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사무에겐 일종의 여흥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훔친다고 하지 않고 들고 온다고 표현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가난한 그들이 생각하기에 도둑질은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의 물건을 나눠쓰는 일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건 활빈당 같은 정의라기보다 자기합리화라고 보는 편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도둑질의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아이가 된다면 그 성격은 조금 달라진다.
'어느 가족'은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유리(사사키 미유)를 데려오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들은 이미 과거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아이를 데려온 전례가 있었다. 그들이 아이를 데려온 것은 단순히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이나 이뻐 보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순간적인 구조'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을 것이다. 쇼타나 유리나 모두 아이가 있어야 할 정상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다. 쇼타(죠 카이리)는 부모가 쇼핑하러 간 사이 차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고, 유리는 부모의 손길에서 스스로 벗어나 베란다 틈새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그들이 있어야 할 위치로 옮겨놓는 것. 그것이 오사무가 움직인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유괴의 방식인 데다가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쇼타나 유리와는 다른 목적으로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어떠한 사정이 있었든 간에 일단 가족이 된 이상 그들은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어 준다는 것이다. 비록 좀도둑질한 우동으로 배를 채울지언정 돈주고 산 고로케 나눠주는 걸 아까워하는 소인배는 아닌 것이다.
정리하자면 어느 가족은 흐트러진 세상의 질서를 그들 나름대로 바로 잡으며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많이 가진 자들의 물건은 부족한 사람이 들고 올 수도 있고, 보살핌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들이 데려가 보살펴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가족의 논리가 완전할 수 없는 이유는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범죄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망각하려 하고 도주하려 한다. 이미 수년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서 있는 위치는 외면한 채 앞으로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응당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외면하기에 그들은 할머니의 작별 인사도, 불꽃놀이도, 쇼타가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듣거나 보지 못한다.)
쇼타 역시 오사무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였다. 그것이 부모의 품을 떠나 살아남을 방법이었을 것이고, 도둑질의 가치판단을 하기에는 조금은 어린 나이였던 것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챙겨줘야 하는 유리가 오면서부터 쇼타의 시선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도둑질은 나쁜 게 아닐까? 유리는 도둑질을 안 시켜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작은 의문은 오사무와 노부요(안도 사쿠라)에게 막혀 사라질 뻔하지만 동생에게는 도둑질을 시키지 말라는 슈퍼 주인(에모토 아키라)의 말 한마디로 인해 극적으로 되살아난다. 결국 쇼타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어느 가족의 위치가 어디인지 세상의 평가를 직접 받아보는 것뿐이었다. 쇼타의 생각처럼 그들의 위치는 잘못된 것이었고, 쇼타 덕분에 노부요 역시 심문을 거치며 그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는 쇼타와 유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쇼타를 대하는 오사무 역시 조금은 성장한 듯한 모습이다.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심스레 질문을 건넨다.
'어느 가족이 있어야 할 위치는 어디인가? 우리 주변의 사람과 사물들은 올바른 위치에 있는가?'
이 질문들은 '어느 가족'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른 가족 영화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가족 영화들 역시 수많은 질문을 남겼지만 그건 사회적이라기보다 개인의 성찰에 관련된 질문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어느 가족'은 그동안의 성찰을 바탕으로 논지를 넓혀 사회적인 부문까지 관객이 성찰하게 만든다. 감독의 전작 '세 번째 살인'에서 사법 시스템에 대한 화두를 던졌던 것과 연결해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이 확실히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사회와 일본 영화 시스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던 최근 인터뷰들을 생각하면 그의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차기작으로 알려진 '진실'은 프랑스에서 제작한다.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카트린 드뇌브 등 출연진들 역시 화려하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더욱 넓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가 일본이 아닌 프랑스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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