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8. 6. 21. 09:13
반응형


편집의 측면에서 보자면 영화란 2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어떤 장면을 뺄 것인가를 결정하는 매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란 아주 축약적으로 삶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매체이기도 하고 또 반대로 삶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기엔 턱없이 작은 매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영화에 매혹되기 시작할 때에 영화는 전자로 기능할 것이고, 영화가 시들해질 즘에는 후자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알프레도는 신부님의 검열에 따라 키스신을 모조리 편집하는 일을 하게 된다. 키스신이 등장해야 할 타이밍에 키스신이 사라지니 점프컷이 발생하게 되고,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에 분노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키스신은 관객들의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관객은 줄지 않고 상영 때마다 뜨거운 반응이 이어진다. 


그러다 불의의 사고로 극장은 불에 타버리고, 새로 건축되어 주인이 바뀐 극장에서는 더 이상 검열 없이 키스신까지 전부 상영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키스신이 포함된 영화의 반응은 예전만큼 폭발적이고 뜨겁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키스신이 신기하고 좋지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점차 무뎌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이처럼 때로는 보지 않는 것이 보는 것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영화에선 이와 비슷한 테마가 조금씩 변형되어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알프레도는 영화관 화재 때 시력을 잃게 되는데, 이는 앞을 보던 사람이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알프레도가 시력을 잃고도 잘 살아가는 이유는 볼 수 없는 것이 보는 것에 비해 꼭 열등하지만은 않다는 걸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들려주는 병사이야기도 같은 맥락인데 공주를 보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던 병사가 하루를 남겨놓고 떠나는 것은 그녀를 손에 넣어 매일 바라보는 것이 꼭 행복의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알프레도와 토토의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알프레도는 토토가 자신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서로를 보며 계속 함께하는 것보다 토토가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토토가 행복해지는 길이라 믿는 것이다. 다시는 토토를 못 보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더군다나 수십 년에 걸쳐 수백 편의 영화를 수십 번 반복 관람한 그의 눈에 영화란 세상의 극히 일부를 담고 있는 그릇일 뿐이다. 그는 어린 소년 토토의 눈에 영화 속 세계가 얼마나 넓고 방대해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결국 알프레도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토토가 2시간짜리 영화 속에 남기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것은 수십 년 전 토토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필름이었다. 그건 온 세상 모든 사랑을 축약적으로 담은 알프레도만의 감동적인 영화였다. 


시네마천국은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편집의 미학이 영화에서, 또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반응형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가족(2018)  (0) 2018.07.31
변산 (2017)  (1) 2018.07.07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 (2017)  (0) 2018.05.28
아버지와 이토씨 (2016)  (0) 2018.05.20
챔피언 (2018)  (0) 2018.05.08
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