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8. 7. 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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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보며 이렇게 괴로울 줄은 몰랐다. 그의 영화가 안 좋았던 적은 있지만 끔찍하다거나 최악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최악이다. 


좋게 말해서 개성 있는 이 시나리오는 힙합 청년에 관한 진지한 드라마라기보다 블랙코미디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후반부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은 블랙코미디가 아니고선 다른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단순히 우스꽝스럽다고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블랙코미디라면 이 영화는 무엇을 비꼬고 무엇을 풍자하는 것인가? 나는 변산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변산은 허술한 시나리오를 해결하는 궁여지책으로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차용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개연성 없고 허술한 시나리오가 의도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변산이 이야기는 허술할지언정 메시지는 착하잖아 식의 자기 위로를 할 수 있는 영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변산의 시놉시스는 고향을 떠나 살아가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자신의 무언가를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주인공 학수(박정민)가 과연 무얼 잃어버렸냐는 것이다. 영화가 규정하는 학수는 '실패자'다. 학수는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6년 동안 쇼미더머니에서 예선 탈락했으며 최근에는 아예 통편집까지 당한 고시원을 전전하는 무명 래퍼라는 것이 영화가 초반부에 우리에게 전하는 주된 내용이다. 이 중에서 흥미로운 설정이 2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래도 학수가 랩 실력을 나름 인정받는다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한테 냉담하며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자격지심이 있다는 것이다.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지금 학수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실력이 있지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과 자긍심일 것이다. 그런데 변산이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극 중 선미(김고은)는 그가 변했다고 말하는데 그 주장의 주된 근거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유교 사상을 끌고 와서 주인공을 호로자식 만드는 이 영화는 힙합으로 분출되는 학수의 예술적 자아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학수가 사는 힙합의 세계는 유교의 세계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장유유서 따윈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적어도 랩 가사 속에선)

그런 학수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아버지의 사과를 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자신이 있던 곳을 떠나 유교의 세계인 변산으로 온 학수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는데 영화는 그런 학수의 마음을 조명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학수가 얼른 힙합의 세계에서 벗어나 변산으로 적을 옮기기 바라는 듯하다. 


한 마디로 <변산>은 유교적 이념을 내세우는 영화이며 힙합의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힙합을 중심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오히려 랩 장면들은 철저히 초반부에서 조금만 사용하는 것이 훨씬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이렇게 힙합으로 무장한 척해놓고 유교 논리를 들이미는 건 엄연히 관객을 속이는 행위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쇼미더머니 특별 공연이라는 것도 우습다. 얼마나 힙합에 대한 고민 없이 자기 편한 대로 끌어다 쓰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변산>의 홍보문구에 청춘을 들이미는 것도 상당히 불쾌하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청춘의 가치란 '성공'과 무조건적인 복종을 전제로 하는 '효'가 핵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입상한 학수와 그를 동경하는 백일장 탈락자 선미가 성인에 되고 나서 뒤바뀌는 부분을 살펴보자. 아픈 부모님을 잘 봉양하는 선미는 타고난 실력은 없지만 노력해서 상까지 받는 소설가가 되었고, 타고난 시인이었던 학수는 시를 저버린 불효자라 성공하지 못한, 이상한 권선징악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며 개과천선한 학수가 멋지게 공연하며 '이상한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건달 용대(고준)와 첫사랑 미경(신현빈) 역할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용대는 주인공이 어릴 때 학교폭력을 가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는 코믹한 의도(?)를 가진 인물인 듯한데 의도야 어쨌건 영화 속에는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괴롭히는 구도가 반복된다. 학수와 용대는 말할 것도 없고 경찰이 등장하는 시퀀스도 마찬가지다. <변산>은 지속적으로 학수의 금의환향 콤플렉스를 건들며 그를 실패자로 규정짓고, 성공의 가치를 드높이는데 몰두한다. 


미경의 이야기는 더 납득하기 힘든데, 목걸이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난 듯 보이는 그녀였지만 결국 최종 종착역은 또 다른 권력이었다. 작가는 이런 난잡한 이야기들이 진흙탕에서 한바탕 뒹구르고 나면 모두 해결되는 것처럼 써놨는데 참으로 편한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편한 사고방식이면 아버지를 그리 쉽게 용서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도 아닌 듯하다. ㅎㅎ)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힙합을 잘 썼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전문적인 가수가 아닌 박정민 배우가 직접 랩 메이킹까지 참여해 보여준 랩 실력은 무척 훌륭했다. 그렇지만 영화 내내 비슷한 비트, 같은 랩 스타일만 반복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의아스럽다. 보다 다양한 분위기에서 랩을 활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가령 이 영화의 유머 장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야기를 방해하면서까지 유머로 채워놓았는데 거기에 힙합이 섞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엔딩 크레딧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신나는 비트 위에서 춤추는 결혼식 장면도 가능했을 것이다. 어째서 신나는 힙합 장면은 없는가? 정말 힙합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만든 영화가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이 영화가 힙합을 다루면서도 힙합에 대한 리스펙트가 전혀 없다는 걸 느낀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노래방에서 선미가 폭풍랩을 펼쳐 보이고 나가는 장면인데, 그건 학수에게 대놓고 '네가 그렇게 대단해? 네가 하는 랩이 그렇게 대단한 거야?'라고 묻는거나 다름없는 장면이었다. 

물론 취향에 따라선 그 장면에서 빵 터진 관객도 있겠다마는 그 장면이 정말 유머로써 기능할 수 있으려면 뒷부분에 그에 관해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어야 했다. 학수가 쇼미더머니 공연하는 걸로 대답이 된 거 아니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장면은 이 영화의 논리인 성공, 좀 더 좋게 포장하면 자아를 찾은 것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다. 


이게 내가 <변산>이 최악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에서 힙합이 필요한 이유를 어떠한 부분에서도 설득해내지 못한다. 힙합을 희생해서라도 좋은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다. <변산>은 나를 비롯해 꽤 많은 사람들에게 100% 이준익 감독 최악의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100%인 이유는 이보다 더 못 만들기도 힘드니까... 어쨌건 바닥을 찍은 이준익 감독님이 다음 영화에선 다시 도약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준익 감독에 대한 신뢰로 평도 안 찾아보고 봤던 게 <변산>인데 다음 작품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감독님 그래도 평 괜찮으면 극장 가서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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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