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8. 5. 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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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이토씨>에서 이토씨의 역할은 단연 아야와 아버지를 이어주는 역할이다. 시종일관 아버지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토씨는 아야가 아버지와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토씨의 전사는 영화에서 명확하고 보여주지 않는데, 내공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 것으로 보아 전 아내, 전 직장과 관련해 많은 일들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아야와 아버지 사이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보아 이토씨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버지는 극중 72세로 설정되어있는데 아버지와 동년배인 현시대의 노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생활양식의 변화 속에서 살아온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당에 감나무 하나쯤은 있는 시대는 지나갔고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식사 자리는 낯선 풍경이 되었다. 

그보다 한 세대 아래인 이토씨 역시 시대의 변화에 밀려내려온 인물로 보인다. 구세대로써 완전히 적응하지도, 낙오하지도 못한 그가 택한 생존전략은 젊은 세대의 방법인 프리타다. 그러니까 이토씨는 구세대와 신세대가 뒤섞인 존재인 셈이다. 자연히 이토씨는 아야와 아버지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아야의 아버지를 보며 야마다 신지 감독의 <가족은 괴로워> 시리즈가 생각이 났다. 노인이 주인공인 노 감독의 가족 영화인데 시리즈 내내 가부장적이고 구시대적이며 가족들의 말에도 절대 고집을 굽히지 않는 전형적인 노인 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시대에 뒤떨어진 영화와 캐릭터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영화가 그리는 노인 상도 변하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시대가 변한다고 구세대가 되어버린 인물을 조명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관점은 가족은 괴로워 시리즈와 아버지와 이토씨의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족을 위해 40년을 희생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현재 상태는 갈 곳 잃은 노인이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건) 

아이러니한 것은 진정으로 아버지의 상태를 걱정하는 것은 가족이 아닌 이토씨와 그의 제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아야의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관객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아이러니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이토씨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토씨를 만난 아야가 잠깐이라도 부러웠던 이에게는 이 영화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그러니 이토씨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에게 다가가라. 다녀온 후에도 옆에 있는 누군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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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