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진 킹:세기의 대결>은 스포츠 드라마의 매력보다는 빌리 진 킹이라는 인물이 시대의 억압을 극복하는 해방드라마,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성장 드라마로써 더 흥미롭다.
그렇지만 현실이 너무 영화같은 이야기라 그런 것일까? 좋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흡입력 높은 영화는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엠마 스톤과 스티브 카렐이다. 최근 몇 년간 헐리우드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입증해낸 두 사람은 무척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두 사람의 연기 방식이 자신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여 영화의 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스며드는 연기를 통해 영화의 품격을 높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방면 탑이라 칭할만한 두 사람이 보여주는 연기 앙상블은 대단한 면이 있고, 연출도 그에 상응하는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적인 측면에서 조금 더 눈길이 가는 건 바비 릭스(스티브 카렐) 캐릭터였다. 그건 바비 릭스라는 인물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빌리 진 킹(엠마 스톤)에 관한 이야기들은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라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물론 옳은 이야기이고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 이야기는 맞다.)
이 영화가 스포츠 드라마로써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면 그것 역시 바비 릭스 캐릭터일 것이다. 타고난 관종으로 본의 아니게 성 평등 이슈를 촉발하는 빌런 역할을 맡게 된 그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20분 동안 시종일관 보여주던 허세 캐릭터를 집어던지고 테니스에 집중하는, 그토록 오랜기간 선수생활을 했음에도 아직 승부에 목말라하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웃지 못하고, 라커룸에서 눈물을 훔쳐야하는 그녀의 모습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일 뿐인 이 경기가 왜 그렇게 나쁜 것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국내 개봉명인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에 관해서 원제를 살리지 못한 잘못된 제목이라고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는데(네이버 영화, 왓챠 모두 공감수 1위가 제목관련 지적이었다.) 이것은 좀 과한 비판으로 보인다.
원제인 'Battle of the sexes'가 중의적인 의미로 더 좋은 제목인건 분명하지만, 이 의미를 그대로 살려서 번역하기란 쉽지않다. 그대로 직역하자면 중의적인 의미가 살지않고, 원음을 그대로 옮겨 '배틀 오브 섹스'라고 하기엔 마케팅적으로 곤란하다.
물론 아쉬움이야 표현할 수 있지만 필요 이상의 비난은 제목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보다 더 잘못된 행동일 것이다.
그간 워낙 제목관련한 병크가 많아서 그런 것이라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비난이 과하고 또 불필요한 경우도 없지않아서 아쉬움이 든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제목 번역 오류보다 수입사 마음대로 편집하는 것에 더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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