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2018. 7. 25. 20:45
반응형


"하지만 사물은 같아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건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거예요. 그 당시는 밤의 어둠이 훨씬 더 깊었을 테고, 달은 그만큼 더 환하고 크게 빛났겠지요.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때 사람들은 레코드나 테이프나 콤팩트디스크가 없었어요. 일상적으로 내가 듣고 싶을 때마다 음악을 이렇게 정리된 형태로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들에게 음악을 듣는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을 거예요." (1Q84 1권 P,455) 


언젠가부터 팟캐스트를 즐겨듣기 시작했다. 팟캐스트와 지나간 라디오를 오가며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 듣는 방식이었다. 인터뷰 코너만 찾아 들은 적도 있고, 영화나 책에 관련된 내용만 찾아다닌 적도 있다. 나의 관심사를 따라 이렇게 저렇게 유랑하다 보니 자연히 이동진 평론가의 팟캐스트나 라디오를 듣는 빈도가 잦아졌다. 방송을 통해 동진 DJ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팟캐스트를 통해 푸른 밤 다시 듣기를 하는 일이 잦아졌지만 왜인지 푸른 밤을 본방으로 듣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건 나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중 한 대목을 보면서였다. 수백 년 전 자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 없던 사람들에게 음악이 특별하게 느껴진 것처럼 자유로운 팟캐스트 대신 라디오를 듣는  나에겐 특별한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선뜻 라디오를 켜지 못한 것 같다. 매일 같은 시간이 되면 라디오를 켠다는 것, 시간적 거리를 두지 않은 채 동시간적으로 얘기를 나누고 사연을 받아들인다는 것, DJ, PD, 작가님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청취자분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진한 감정적 접촉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기에 설레면서도 두려운 마음에 라디오 켜는 일을 미루며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다행히 푸른 밤을 꼬박꼬박 챙겨 듣고 있다. 라디오를 미뤘던 이유가 사소한 마음이었던 것처럼 사소한 계기 덕분에 라디오를 틀 수 있었다. 라디오를 듣는다는 일 역시 우리 삶의 사소한 일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삶의 즐거운 일들은 대부분 사소한 일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오래오래 푸른 밤 들으며 사소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푸른밤

반응형

'잡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맥주 양조장 투어 체험기(2021. 12.)  (0) 2021.12.16
젤다와 방황  (0) 2019.02.08
뽀로로 도서관 답사기  (0) 2018.07.15
지하철의 책읽기. 쓰다보니 나의 독서습관까지  (1) 2018.06.04
핫꼬부리  (0) 2018.04.23
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