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2019. 2. 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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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면서도 혼자 지내는 시간들을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도돌이표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반복됐고, 나는 쉽사리 그 생각들을 끊어내지 못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들은 무척 즐겁다가도 혼자 있는 시간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고, 누구도 만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들은 시간을 견디는 일을 무디게 만들었지만 온기가 없는 차가운 시간들이었다.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일들이 필요했다. 어떠한 의미도 필요없고,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게임기를 하나 구입했다. 게임에 전념할 수 있다면 생각의 소용돌이에 들어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큰 의미를 구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가장 유명한 게임을 샀다. 여성 캐릭터의 모험을 그린 그 게임의 가장 주요한 키워는 ‘방황’이었다. 방대한 맵과 높은 자유도를 갖춘 게임은 유저가 마음껏 방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그것이 이 게임의 미덕이었다. 마음껏 방황해도 좋다는 것은 낭비하는 시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맵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일을 하던 그것은 모두 게임을 즐기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며칠 전 읽었던 책의 한 부분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터키의 한 학회에서 초청을 받은 저자는 난생 처음 터키를 방문하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터키를 찾은 그는 차를 빌려 학회가 열리는 도시로 갔지만, 그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정확한 장소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도시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지만 결국 그는 학회에 참석하지 못했고,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게 된다. 학회 장소를 찾느라 도시를 원없이 방황했던 그는 미리 봐두었던 장소에서 식사를 하였고, 그 순간 자신이 하루만에 이 도시를 훤히 꿰뚫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크기조차 가늠하지 못했던 도시를 불과 몇 시간만에 구석구석 자세히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방황하는 시간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것이 침대 속 방황이어도 좋고 게임 캐릭터의 방황이어도 좋다. 세상은 넓고 정해진 길만 따라 걷기엔 우리의 삶이 생각보다 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넓고 더 깊이 더욱 천천히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헤매기를 반복하는 어느 게임의 주인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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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