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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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극영화는 소설, 다큐멘터리는 논픽션으로 연결되는 것이 보통일텐데 세계대전Z는 신기하게도 소설임에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형식의 당위성에 대한 설득력있는 답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나에겐 꽤 인상적이었다. 전세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전쟁 속에서 단순한 통계치가 아니라 개인을 조망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출발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 형식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에는 화자를 오인해서 이해하기도 하고, 각 지역의 에피소드들이 1회성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었고,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전반부에는 상대적으로 약소국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익숙지않은 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적인 부분들과 좀비이야기들을 엮어 서술된 점이 흥미로웠고, 자연스레 한국의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그러나 막상 한국 이야기를 읽고나자 무척 실망스러웠는데 분량도 짧을뿐더러 남한보다는 북한이야기가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내용도 특별히 흥미롭진 않았다. 바로 뒤에 이어진 상당한 분량의 일본이야기, 특히 히키코모리 이야기 또한 별로였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다양한 나라의 이야기들도 현지인들에게는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중반부를 넘어가자 다큐멘터리 형식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서의 피로감이 생각보다 큰 것이다. 직접 설명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한 서술 방식의 특징이기도 한데, 인터뷰 하나하나에 대해 어떤 상황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추리하다보니 흥미로운만큼 지쳤던 것이다. 

또 인터뷰의 분량이 길어봐야 30페이지라서 몰입해서 사건에 빠져들 무렵 인터뷰가 끝나버린다. 특히 저자의 서술방식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에서 한 템포 빠르게 끊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면이 있었다. 장르소설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몰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확실히 세계대전Z는 서스펜스가 강조되는 좀비소설은 아니다. 중간중간 긴박감 넘치는 부분도 있지만 분량이 많지는 않다. 오히려 상당부분은 정치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서스펜스를 덜어냈음에도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등공신은 저자의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의 원천에는 모든 목표가 사라지고 오로지 타도 좀비!가 목적일 때 지구는 어떻게 변화할까? 라는 놀라운 가정이 있다. 그동안 상당수의 좀비물이 특정인물들의 싸움을 말했던 것과는 확실한 차별화인 것이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아쉬웠던건 미국 위주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에서 반격을 시작한 무대가 미국이니 당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처음 좀비가 퍼져나갈 때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소설을 다 읽고 영화 월드워Z를 보았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원작과 무관한 내용의 영화였다. 소설 속에 정말 흥미로운 설정들이 많은데 그런 것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전세계를 좀비가 장악했다는 기본 설정만 가져와서 만든 영화였다. 

오히려 각색하면서 바뀐 설정들이 눈에 띄는데 좀비가 사람과 거의 같은 속도로 뛰어다닌다던지 병균이 있는 사람은 물지 않는다는 설정은 원작과는 다른 영화만의 설정이다. 

이토록 판이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영화의 맥락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세계 각지를 다니며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과 서스펜스 중심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 핵심인 듯 하다. 


영화만의 장점을 꼽자면 원작소설의 조각 몇 개를 추려내서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꼽고 싶다. 영화 매체의 한계를 인정하고 방대한 원작의 세계를 축소시키기보다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영화만의 새로운 세계를 형성했다는 점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1편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월드워Z2의 제작이 계속 연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내정된 상태인데 연기된 이유는 각본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원작이 있지만 사실상 오리지널 각본이나 마찬가지라 보다 신중하게 세계관을 만드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환영한다. 어차피 짧지않은 공백이 생겼으니 보다 확실한 각본으로 좋은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세계 대전 Z
국내도서
저자 : 맥스 브룩스(Max Brooks) / 박산호역
출판 : 황금가지 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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