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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하나를 골라야한다면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별히 분량에 따라 편식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내 마음속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들은 대개 단편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레이먼드 카버는 왠지 모르게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드는 작가였다.
워낙 명성이 높은 작가이기도 하고, 오로지 단편만 썼다는 점도 관심이 갔다.
그럼에도 게으름에 책 볼 시간이 없어서 레이먼드 카버를 접하지 못하다가 모비딕을 구입하면서 드디어 오랜 숙원이었던 대성당을 함께 구입하였다.
레이먼드 카버의 책 중에 망설임 없이 대성당을 구입했던 이유는 빨간 책방 때문이었다.
<책, 임자를 만나다> 시간에 대성당을 직접 다루기도 했고, 그보다 1년 전에 대성당 수록작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낭독했을 때 내가 그 팟캐스트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걸 들었을 시점은 훨씬 뒤이지만,,)
모비딕과 함께 산 책이기 때문에 모비딕과 함께 읽었는데 모비딕의 경우 다른 책과 함께 읽으면 또 6개월동안 읽을 것 같아서 대성당은 이동중 책 볼 틈이 있을 때 들고다니며 읽곤 했다.
그래서 기간으로 보자면 모비딕보다 더 오래 걸렸는데 앞쪽 절반은 이동 중 틈틈히 읽은 분량이고 나머지 절반은 각잡고 하루에 1~2작품씩 1주일 즈음으로 읽어냈다.
빨간책방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지만 상대적으로 뒷부분의 소설들이 더 좋은 경향이 있다.
사실 이동 중에 대성당을 읽으면서 그렇게까지 인상적이다라는 느낌을 못받았는데 거기엔 이 짧은 소설마저 끊어읽은 탓도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동 중에 소설집을 들고다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듯 하다.)
대성당을 앉은 자리에서 읽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이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게 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텍스트로 직접 읽으니 또 새로웠고, 나 역시도 가장 감동적인 작품은 '열' + '대성당'까지 3편이었다.
거기다 한 편 덧붙이자면 '내가 전화를 거는 곳'까지.
빨간책방 들으면서 공감가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다시 읽어보니 재밌는 소설이지만 생각보다 페이지가 안넘어간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었다.
완전 공감. 하루에 한 편씩 대성당을 읽는 시간은 참 행복한 시간들이었지만, 생각보다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더뎠다.
그리고 단편 '대성당'이 얼마나 뛰어난 작품인지 말로 설명하려 할수록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그게 참 정확한 말이다. 이 작품은 그냥 뛰어난 작품이라는 게 가장 정확하고 깔끔한 설명인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빨간 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이 멋지게 대성당을 설명한 표현을 인용하면서 포스팅을 마칠까 한다. (가능하면 구술한 것을 정확히 옮기려 했으나 읽기 쉽게 손 보거나 생략한 부분도 있음)
'그러니까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이런 생각이 드는거예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어떤 소설이냐면 예를 들어 비커에 물이 차있어요. 그 비커에 어떤 물질을 100g까지 녹을 수 있는 물이 있다고 할 때 실제로는 100g이상 녹일 수 있어요. 그걸 화학에서 과포화용액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과포화용액을 다루는 소설인거예요. 100g까지 녹일 수 있는 물에 103g을 넣었다고 쳐봐요. 그럼 그 순간에는 결정이 안생겨요. 근데 그 비커의 벽을 유리막대로 그어버리면 결정이 생기죠. 그렇게 됐을 때 결정이 생기는 이유는 유리막대로 긁어주는 작은 행위 아니면 100g까지 녹일 수 있는 물에 3g을 더 넣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앞의 100g을 자세히 묘사하고 마지막 3g을 묘사하게 되는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서는 앞의 100g을 묘사하지 않아요. 그리고 3g만 묘사합니다. 혹은 유리막대로 긁어주는 행위만 묘사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이야기만 다루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앞에 생략해버린 100g의 이야기를 깔고 있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어떤 것을 소설가가 이야기 할 것이냐에 관해서 레이먼드 카버는 굉장히 흥미로운 작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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