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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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입니다. 



이승우 작가는 밤은 책이다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생의 이면을 읽어보려했으나.. 도서관에는 이상하게도; 청소년용 생의 이면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승우 작가의 다른 도서를 찾다가 보게 된 책이 지상의 노래였습니다. 


지상의 노래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진행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여행 작가 강상호와 그의 동생 강영호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유작에서 등장하는 '천산 수도원'을 보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차동연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차동연의 조사 과정에서 퇴역군인 '장'과 한정효의 이야기도 드러나죠. 앞의 네명의 인물이 이야기가 같은 선상에서 이어지고 있다면 그와 별도로 후의 이야기도 진행됩니다. 이들 다섯 명의 이야기는 한 장에 걸쳐 전환되며 진행됩니다. 책의 마지막장에 이르러서는 장 안에서도 서술의 초점이 바뀌면서 긴장감을 높여가죠. 


지상의 노래의 스토리는 1970년대 갑작스레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산수도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천산수도원의 진실을 밝혀나가려는 자와 천산수도원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자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고 결국 마지막에 만나게되죠. 


이승우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가장 특이했던 점은 동어반복을 통한 묘사였습니다. 언뜻 보기엔 말장난같은데 곰곰히 뜯어보면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예리한 분석이더군요. 


천산 수도원의 벽서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벽서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 그 벽서의 운명이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 수도원의 벽서가 세상에 알려질, 우연하지 않은 다른 경로를 상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든 우연한 경로일 수밖에 없다. 어떤 우연한 경로도 다른 경로보다 더 우연하거나 덜 우연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그 벽서가 어떤 경로로든 알려지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 책의 첫 부분입니다. 이러한 묘사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게되죠. 이 방법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심리묘사들이 제게는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에서 계속적으로 언급되는 죄의식을 설명해주는 수단인거죠. 인간은 무의식을 통해 자신을 숨기고 결국 의식이 자신의 무의식을 돌보지않을때 이 소설의 비극은 발생하게 됩니다. 자신이 돌보지 않았던 무의식을 발견함으로써 죄의식이 나타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것이 종교적 구원인 것이죠. 




천산 수도원은 지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그곳이 지상에서 가장 먼 곳인 이유는 지상과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세상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그곳의 수도자들은 세상을 버리고 떠난 자들이다. 그들의 기다림은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적극적이고 치열한 삶의 방법이다. 그들은 온 몸과 마음과 혼을 다해서 기다린다. 그 때문에 그들의 기다림은 초월적이다. 


'지상의 노래'에 관한 이승우 작가의 글 중 한부분을 발췌해봤습니다. 책의 제목과 관련된 부분인데요. 개인적으론 '지상'이라는 단어가 참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지상과 대비되는 장소는 보통 하늘이겠지만 소설안에서 하늘이라던지 천국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도원의 지하라는 공간이 등장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지하라고 하면 지상에서의 일들을 피하기 위한 개념으로 생각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하는 모든 지상의 움직임을 느끼는 곳입니다. 즉, 형제들이 지하로 내려가는 것은 세상의 움직임을 피하겠다는 뜻이 아닌거죠. 그들은 천산의 요새를 찾아 수도원을 짓고 세상을 피하며 살아가지만 세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가올지도 모르는 구원을 기도하는 것이죠.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숫자 21의 의미입니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이 후가 수도원을 들어가서 대기하게 되는 시간은 삼이레입니다. 21일이죠. 한정효가 처음 감금 되는 시간도 3주고 마지막으로 장의 초소 근무기간 역시 1년 9개월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숫자 21이라는 숫자는 제각기 다른 형태로 표시되지만 은근히 21이라는 숫자를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제 지식이 짧아서 잘모르겠지만..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되어지지는 않네요. 


지상의 노래는 상당히 특이한 소설이었습니다. 5명의 인물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구조자체도 특이하겠지만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굉장히 잘 읽히면서도 꼼꼼하고 반복적으로 읽게 된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읽었던 허삼관 매혈기 같은 경우는 일단 책 자체의 여백도 많지만 굉장히 스피디하게 읽혀집니다. 소설 자체의 유쾌함도 작용하지만 글을 한자한자 새기기보다는 빠르게 읽게되는 스타일의 소설이죠. 지상의 노래 역시 어느 정도 빠르게 읽혔습니다만 이 소설은 예외적으로 한 문단을 반복해서 여러번 읽게 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 책이 다른 책에 비해 압도적으로 재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무언가 재밌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중하고 몰입했다고 할까요. 그저 재밌다고 말하기엔 좀 단순하다고 느껴지는 독특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저자
이승우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08-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수상 작가 한국 소설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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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