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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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1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몸과 마음과 풍경이 만나고 갈라서는 언저리에서 태어나는 김훈 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군대에 있을 때 김훈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섬세한 묘사보다는 서사성이 강하고 빠른 전개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측면에서 김훈 작가의 소설은 싫어하는 류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김훈의 소설은 무언가 책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분명 읽기도 힘들고 같은 부분을 서너번 반복해서 읽는 경우도 허다한데 계속 읽게 되더라구요. 꼭 내가 이 책을 다 읽어내고 말테야 라는 오기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한건 김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여태까지 내가 주로 보던 것과는 다른 소설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죠. 

가장 인상적인건 역시 김훈의 묘사력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글로 풀어내는 그의 능력을 보고 있자면.. 솔직히 말해서 백날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저런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의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소설도 좋지만 전 소설가의 산문을 보는 걸 참 좋아해서요. 김훈의 산문은 어떤 것인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또 기행문이라면 그의 묘사도 질리도록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른 책입니다. 


책은 역시 좋았습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분량의 책인데 굉장히 여러번에 걸쳐서 읽었습니다.(10번 이상) 3~40쪽 가량 읽으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글을 읽어도 온전히 이해하면서 읽는다는 기분이 들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조금씩 음미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편인 소설들과 함께 읽었네요. (김애란의 책들... 침이 고인다와 비행운.) 원래 여러 편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인데 확실히 독서할 시간이 충분한 경우에는 이 방법이 맞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하루에 200페이지씩 읽는다는건... 저한텐 즐겁다기보다 괴로운 일일듯 ㅠ) 


어찌됐건 제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김훈 작가의 좋은 글들.. 원래 책을 보며 좋은 구절들은 따로 적어놓는 편인데 이 책은 유달리도 많이도 적어놨네요. ㅎㅎ 

그 중 김훈 작가의 묘사력과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을 하나 적고 포스팅을 마무리하려합니다..

아무래도 다음엔 김훈 작가의 소설을 한편 읽어야 할듯! 


제가 선택한 부분은 책 초반부에 봄나물을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다양한 나물들이 된장과 만났을 때를 묘사하고있는데 제게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쑥된장국이었어요. 


달래와 냉이는 그렇고, 쑥된장국은 또 어떤가, 쑥은, 그야말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여리고 애달프다. 이 여린 것들이 언 땅을 둟고 가장 먼저 이 세상에 엽록소를 내민다. 쑥은 낯선 시간의 최전선을 이끌어간다. 쑥들은 보이지 않게 겨우 존재함으로써, 이 강고한 시간과 세월의 틈새를 비집고 나올수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들에게는 이 세상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슬픔과 평화가 있다. 된장 국물 속에서 끓여질 때, 쑥은 냉이보다 훨씬 더 많이 된장 쪽으로 끌려간다. 국물 속의 쑥 건더기는 다만 몇 오라기의 앙상한 섬유질만으로 남는다. 쑥이 국물에게 바친 내용물은 거의 전부가 냄새이다. 그 국물은 쓰고 또 아리다.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아린 냄새가 된장의 비논리성 속에 퍼져 있다. 그 냄새는 향기가 아니라, 고통이나 비애에 가깝다. 쑥된장국의 동물성 짝은 아마도 재첩국이 될 것이다. 재첩은 콩알만한 크기의 민물 조개다. 섬진강 아랫마을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그 국물의 색깔은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고, 그 맛은 동물성 먹이 피라미드 맨 밑바닥의 맛이다. 차마 안쓰러운 이 국물은 그 안쓰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데워준다. 쑥된장국이 재첩국과 다른 점은 동물성의 그 몽롱한 비린내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쑥된장국의 냄새는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곳의 정갈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 풀은 풀의 비애로써 인간의 비애를 헐겁게 한다.                                 -자전거 여행 p. 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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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