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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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7-09-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렇고 그런 일상에 단물처럼 고이는 이야기들달려라, 아비의 작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한국 문단의 젊은 작가를 대표하는 분들 중 한분이죠. 달려라, 아비 이후 김애란의 두번째 소설집입니다. 


도도한 생활 
침이 고인다 
성탄특선 
자오선을 지나갈 때 
칼자국 
기도 
네모난 자리들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이렇게 8편이 수록되어있습니다. 


달려라, 아비와 비행운 사이에 끼인 작품집으로서 개인적으로 3권의 책을 비교해보자면 침이 고인다는 가장 재밌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책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어요.. 애초에 단편이 모인 작품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웃길일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3권의 책은 다 조금씩은 다른 색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여튼 각설하고..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참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분명 8가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상황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게 공감가는 그런 느낌... 똑같은 상황을 겪진 않았지만 그들의 기분을 저도 알것만 같더라구요. 


공감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봤더니 떠오르는 게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의 삼촌 브루스리라는 천명관의 작품에서 작가의 말에 실려있던 천명관의 소설관을 드러내는 구절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나는 소설이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부서진 꿈과 좌절된 욕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 잡았다 놓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파탄 난 관계, 고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운명에 굴복하는 이야기,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이야기, 암과 치질, 설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실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들, 아직도 부자가 될 희망에 들떠 있는 이들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누군가는 그 구원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그것은 불행을 즐기는 변태적인 가학취미일까요? 아니면 그래도 자신의 인생이 살 만하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서일까요?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구원의 길이 보이든 안 보이든 말입니다. 만일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좋은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불행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을 꿈꾸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소설이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장 느리고 완곡한 형태일 것입니다. 또한 소설을 읽는 동안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잠시 키득거리거나 주인공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짓거나 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거나, 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언제나 나의 소설이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생활의 방편이란 목적이외에 내가 소설을 쓰는 거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읽었던 소설의 내용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마당에 작가의 말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죠. 근데 이상하게도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같은 경우는 소설의 내용보다도 오히려 작가의 말이 더 인상깊었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옮겨놓은 저 구절은 처음 저부분을 읽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종종 떠올리곤 하는 말들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나름 열심히 읽을 때도 있고, 책에는 손도 안되는 때도 있는데.. 그래도 머리 한켠에는 항상 책을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반복하는 사람으로써.. 어느 순간 소설을 왜 읽는가? 라는 질문은 언젠가 꼭 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질문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구절을 읽은 후 답을 어렴풋이 알것도 같더군요. 


두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얼마 전 내일을 위한 시간 라이브 톡에서 이동진님이 했던 악의 추상성에 관한 말이었습니다. 

개인이 각자 가지고 있는 고통을 수치로써.. 또는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각자의 고통을 추상화하는 것이 악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수십만명이 사살되었다는 통계를 얘기할 때 우리는 그저 수십만명이라는 숫자를 볼 뿐이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크나큰 아픔과 고통을 지니고 있다는 거죠. 그것을 뭉뚱그려 수치로 표현하는 것이 악의 모습이라는 거죠. 

또 다른 예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들 수가 있습니다. 사실 청춘이지만 안 아플수도 있는거고 대다수가 아픔을 느낀다 하더라도 그들의 개별적인 아픔을 들여보지 않고 원래 그 시기는 아픈거야.. 라는 식의 추상화는 상당히 위험하고 나쁜 모습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생각이 결합되는 순간 비로소 소설을 읽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더이상 소설을 읽고 '그래서 이 소설의 주제와 교훈은 뭐야?'라고 투덜거리지 않게 될 수 있었죠. 


그런의미에서 이 시기에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읽은 것은 굉장히 행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김애란의 짧은 소설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언가 알 수없는 선으로 이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소설까지 읽고 책을 덮으니 그들을 잇고있는 선이 저에게도 연결되있다는 것을 알 수 있더군요. 8개의 소설을 읽는 동안 저는 굉장히 크나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더불어 무언가 큰 고통이 있어야만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니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인터넷을 보다보면 종종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보게 됩니다. 수 많은 댓글들이 있죠. 여러 종류의 자기계발서들과 이미 그 시기를 지나갔던 사람들의 조언과 지혜가 담긴 베스트셀러들.. 하지만 저는 그 어떤 책들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책들은 문학이란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새롭게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 저는 자신있게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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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