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8. 3. 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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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기반 영화에서 얼마나 실제 사건을 왜곡 없이 담아내느냐 하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에 따라 필요하다면 현실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픽션이니까요. 그런데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이게 얼마나 실제 사건과 흡사한 지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은요. 그나마 힌트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겠죠.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이 멘트는 나오기도, 나오지 않기도 하고 나오더라도 강조하는 포인트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 토냐의 경우 이 영화가 실화임을 매우 강조하는 편입니다. 시작하자마자 굉장히 긴 자막이 나오는데, 이 영화는 인터뷰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밝힐 뿐만 아니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인터뷰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중심부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과거를 회상하는 인터뷰죠. 아이, 토냐는 그들의 인터뷰를 따라 토냐가 어릴 때부터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시간순으로 쭉 보여줍니다.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은 이 인터뷰 방식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인터뷰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전개되는 매 순간순간 인물의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고, 또 연출적인 포인트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물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 토냐와 전 남편의 인터뷰 화면을 나란히 배치하여 상반된 감정을 대비시키기도 하고, 또 나레이션 상의 목소리를 화면 속 인물이 이어받아서 블랙코미디적인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죠. 


인터뷰의 또 다른 장점은 관객들이 느끼는 이 영화의 신뢰도가 크게 상승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수십 년이 흐른 뒤의 인터뷰이니 '이제는 밝힐 수 있다!' 같은 제목을 달고 하는 인터뷰의 느낌이 든다는 거죠. 그렇기에 이 작품의 장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이 영화를 좋지 않게 본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실화 영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맥도날드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만든 레이 크록의 이야기를 다룬 '파운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레이 크록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영화였습니다. 실화에 충실한 영화였지만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들어간 영화이기도 합니다.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잘했던 부분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파운더가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런 편집을 해야 하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또 결과적으로 메시지가 잘 응축된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죠. 


아이, 토냐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핑계를 만들어 둘러 대는게 특기인 전 남편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겠냐마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시나리오 과정에서 토냐에게 유리한 사실만 취사선택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메시지가 응축된 좋은 이야기 인것도 맞구요. 


그럼에도 제가 아이, 토냐에 마음이 가지 않는 건 왜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과장되게 말하느냐에 대한 문제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인터뷰 기반의 영화라는 자막과 추가로 영화가 끝나면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영상을 틀어줍니다 영화 속 대사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대사를 똑같이 하는데 역시 관객의 신뢰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편집이죠.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는 필요 이상으로 토냐를 옹호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냐의 보디가드를 맡았던 션이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것을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길게 보여줍니다. 적어도 마지막 인터뷰 씬은 불필요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또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으므로 사실상 승리한 셈인데도 차라리 옥살이를 할 테니 피겨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 좀 과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찾아보니 미국 연맹에서 제명된 거라 미국 밖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출전 가능했다는 말도 있고, 또 23살이라는 나이가 사실상 선수 생활의 마무리로 나아가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것은 토냐 하딩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영화화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과하게 토냐 하딩에게 감정이입한 것일 수도 있구요. 어찌 됐건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영화의 단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가해자 미화 이슈에서 이 영화가 벗어날 수 없는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장점이 많은 영화인 것도 분명합니다. 다만 어떤 영화들은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단점이 생기는 이유도 있는데, 이 영화는 불가피한 단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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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