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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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토 준지의 팬은 아니다. 

이토 준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편도 아니고 

작품을 읽었을 때도 경탄하기 보다도 불쾌함과 의문이 더욱 많았으니..

 

그의 작품을 보고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이런 작품을 만드는 이유 또는 이러한 작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굉장히 우문이라는 걸 느낄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엔 한 장르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토 준지이기에 

장르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예술적인 좁은 관점으로만 접근했던 것 같다. 

그건 달리 말하면 내가 호러 장르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랬던 부분도 있다.

 

 책은 1,2 챕터는 이토 준지의 어린 시절부터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시간순으로,

최대한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일들 위주의 글들이고

3,4,5는 일종의 호러 작법 방법론을 펼쳐놓는데 그의 단편을 예시로 들며 이야기하다가 총론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책을 조금 읽어보면 느껴지는 것인데

이토 준지는 그리 달필가는 아니다. 

또 독자의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데에는 꽤나 서툴다.

이를테면 1,2 챕터처럼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다보면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다하더라도 

독자는 작가와 친밀감을 느낀다거나 감정적으로 교감 같은 것이 생기는게 일반적이다.

 

근데 이토 준지의 글은 도통 그런 것이 생기지 않는다..ㅋㅋㅋ 

이건 욘&무 읽었을 때도 비슷하게 느꼈다. 

수십년 작품 생활을 해왔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에 공포심과 미스테리함을 이끌어내는 방법은 훈련이 되어있지만 그 이외에는 완전 초짜인 느낌.

그러니까 어찌보면 이토 준지는 자신의 성격과 가장 잘맞는 공포 단편 만화라는 유일한 길을 운 좋게 찾아간 셈인 것이다. 

 

호러 만화 작법 방법론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는 

예전에 내가 품었던 의문들을 많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토 준지는 그저 작가로 데뷔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매 순간순간 어떻게하면 공포감을 자아내고 기괴함, 미스테리함을 만들 수 있을까 노력했을 뿐인 것이다. 

 

이토 준지가 인용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말처럼

처음에는 이미지가 있을 뿐이고 테마는 나중에 덧붙일 뿐인 것이다. 

그걸 너무 테마에 목 매면서 감상한 것이 실수였다. 

 

또 한가지 핀트가 빗나간 부분이

내가 보통 창작물을 감상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이야기의 소재보다는 캐릭터의 비중이 높은데

이토 준지는 아이디어-세계관의 형성에 중점을 두고 

캐릭터는 오히려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최대한 노말하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방식의 작법을 하고 있었으니 그런 차이를 이해할 수 없는게 나로선 당연했다. 

그건 내가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호러물을 접한 경험이 작은 것도 한 몫했으리라. 

 

아무튼 이제는 이토 준지의 작품을 한층 더 폭 넓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다하더라도 하루에 너무 많은 작품을 보는건 힘들거같지만...

 

마지막으로 책이 굉장히 멋지다. 

이토 준지의 팬들은 알아서 다 산것 같지만.. 소장가치 200%의 책이다. 

물론 일본 원서가 멋지게 만들었기에 한국에서도 이렇게 나온거겠지만 

번역도 훌륭하고 책의 구성만 봐도 품이 굉장히 많이 들었으리라 추측된다.

여러모로 부족함 없는 한국어판을 만든 시공사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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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