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데이빗 핀처가 만들어서 보았던 마인드헌터.
1970년대 후반 행동심리학을 끌어 들어서 프로파일링을 수사에 도입하기 시작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프로파일링을 FBI나 경찰, 언론, 대중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도 극 중 하나의 포인트인 셈이다.
그치만 마인드헌터는 단순한 수사물 그 이상의 야심을 품고 있는 작품이다. 프로파일링의 발전을 그리고 사건을 해결해나가는데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흉악범죄자들을 인터뷰하고 계속해서 사건을 수사해가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개인적인 영향들까지도 넓게 그리고 있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주인공들이 심리학에 능통하고 이전에 없던 것을 정립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들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것을 방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흉악한 연쇄살인범들과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며 데이터베이스를 쌓아나가지만 사생활에서는 그들의 연인, 가족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또 어떤 때는 그들 역시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장면들도 있다.
혹자는 그저 스트레이트한 수사물을 바라며 주인공들의 사적인 영역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는 리뷰도 있던데 내 생각엔 그것이 범작과 수작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마인드헌터는 나름의 의미와 개연성을 가지고 극의 핵심 스토리와 밀접하게 결부시켜 주인공의 사생활을 그려나간다. 간단해보이지만 쉽지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 마인드헌터 같은 작품은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안 봐도 이야기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서 강하게 몰입해서 보고 나면 만족감이 높지만 지금 내가 괜찮은 집중력과 이해력으로 온전히 소화할 수 있을까? 물으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다. 앞선 우려처럼 마인드헌터는 굉장히 밀도가 높다. 유머라는 것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정말 한 씬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거기다 대사도 적지않다. 아니 굉장히 많다. 심지어 등장인물도 많다. 새로운 범죄자들이 꾸준히 등장하는데 이름도 한 두번 밖에 안알려준다. 공포감이 절로 드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인드헌터는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최대한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 드라마가 선형적인 구조로 극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이름 한 번 알려주고 스쳐지나가는 인물이라든지 그다지 기억에 남지않는 인물들은 지나가고 나면 안나온다고 보면 된다. 시청자가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인물이라면 기억의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반복해서 인물을 보여준다. 이름도 몇 번 더 부를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마인드헌터는 정교한 구조로 짜여져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인드헌터는 빡집중해서 봐야 하는 드라마인 것에 변함은 없다. 제작진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시즌 2가 나오고 3년이 지났는데 아예 제작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그냥 시즌 3는 취소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마인드헌터는 시즌2로 끝나기엔 너무 아쉬운 드라마이다. 시즌 2까지는 걸작이라고 평가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즌1이 기초공사였다고 보면 그 탄탄한 토대 위에서 시즌 2의 초반부는 굉장했다. 근데 확실히 중반부 지나면서 본격적인 애틀랜타에서의 이야기는 나도 별로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야기가 늘어졌고, 또 하나는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홀든은 사적인 이야기가 배제된 채 정체되어있다. (후반부 꽤 긴 내용 동안 공황이라든지 다른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마지막 하나는 꽤 큰 규모의 이야기를 마쳤음에도 이야기의 마무리가 조금 의아하다. 대충 사건을 종결해버린 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인가? 대체 왜 흑인 아줌마에게 홀든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홀든이 어렵게 잡아낸 범인(뭐 100%는 아니라 하더라도)은 억측으로 단정 지으면서 본인 또한 홀든에게 바로 억측 시전 해버리는 모순은..;; 무엇보다도 극의 핀트가 확실하게 어긋난 시즌 마무리라는 느낌이다. 이게 1~2 에피소드 정도의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한 시즌의 절반 이상의 분량을 가진 이야기인데 이게 무엇인가..
여러 방면에서 시즌 2 끝으로 갈수록 데이빗 핀처가 지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어쨌거나 마인드헌터는 반드시 시즌3가 나와야 한다. 이렇게 미완으로 남아야 할 작품이 아니고, 반드시 시즌 5 혹은 그 이상 나와서 걸작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배 열심히 만들고 이제 슬슬 물 들어오려 하는데 노 저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넷플릭스는 영 정신 못 차리는 것 같은 게
단기적으로 순위에 들고 조회수 높지만 시간 지나면 아무도 안 볼 양산형 콘텐츠 만들게 아니고 마인드헌터 같은 작품을 확실히 밀어줘야 한다. 이런 작품은 시즌 1,2개 만들어 놓고 제작비 대비 조회수 뽑혔나 숫자로 판단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완성했을 때 30년 40년 동안 넷플릭스의 큰 축을 담당할 수 있는 작품인데 좀 더 큰 가능성과 큰 꿈을 가지고 길게 봤으면 좋겠다.
물론 시즌 3 안 나오는 게 핀처가 바빠서 그런 건지 넷플릭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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