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2018. 5. 12.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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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노희경 작가 작품을 제대로 본 적 없다.

꽃보다 아름다워인가? 고두심이 가슴에 빨간약을 바르는 명장면이 있는 드라마를 어릴 때 보긴했는데 그 장면 외에는 무슨 내용인지 잘 기억도 안나고 그 드라마가 어땠는지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노희경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꽃보다 아름다워를 볼 때도 알고있었고, 그 뒤로도 쭉 노희경 극본의 작품들은 칭찬이 자자했기에 나도 그저 훌륭한 작가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정유미의 차기작이 '라이브'로 결정되었고, 캐스팅 소식부터 노희경과 정유미의 만남으로 어느정도 화제성이 있었다. 나도 물론 기대감이 있었다. 드라마를 잘 안보지만 정유미의 드라마라면 챙겨볼 정도로 그녀의 작품 선구안은 신뢰하는 편이었고, 노희경의 극본이라는 점도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보니 라이브는 나의 기대감을 처참히 무너뜨린 드라마였다. 

그냥 그런 드라마도 아니고 명백한 실패작으로 생각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더 볼 가치를 못느낀 부분이 적지않았으나 여태까지 본 게 아까워서..(나의 고질적인 단점 중 하나 ㅠㅠ) 다 보았고 라이브가 왜 실패한 드라마인지 듬성듬성 굵직한 부분들만 써보려한다. 



1. 인물들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드라마 방영 초반에 뉴스 댓글 몇개 봤는데 왜 이리 인물들이 화가 많냐는 댓글들이 많았다. 

나도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계속 보면서 어느정도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경찰이라는 직업 특성상 아무래도 긴장도가 다른 직업보다 높을 수밖에 없고, 그런 부분을 고성이 오가는 씬들로 표현하되 범인이 잡히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오그라들정도로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기쁨을 표출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방법이었다고 추측한다. 


문제는 그런 방법과 별개로 불필요한 고성이 많았고, 소통이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고,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쓸데없이 감추며 갈등 조장하는 방식도 반복해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안장미(배종옥)의 이혼 사유를 얘기하지않고 무작정 이혼 통보하기(안장미의 성격과도 맞지않으며, 정당한 이유를 말했을 때 거기에 오양촌이 불복할 캐릭터도 아니었다), 기한솔(성동일)이 암에 걸린 걸 숨기면서 나타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갈등이 생기고 고성이 오감에도 밝히지 않는 것(뒤에 나름의 이유를 밝히나 납득하기 어렵다), 강남일(이시언)의 아내가 피자가게 하는 것을 숨기고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기는 것.. 마지막 케이스는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한데 뒤에서 추가 서술하겠다. 



2. 불필요한 이슈들 끼워넣기. 

솔직히 말해서 정말 경찰들 이야기를 하고싶은건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1화보면서 정말 1차원적으로 묘사하는 남녀문제를 보면서 당황했고, 시위 장면도 마찬가지고, 그 후 쭈욱 이어지는 남성에 의해 여성이 희생당하는 범죄사건들의 연속을 보면서 솔직히 경찰이야기는 2순위고 여성으로 살아가기의 고단함을 그리는게 1순위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못할 말은 아니지만 동어반복이 심하다고 느껴졌다. 솔직히 이 작품이 왜 70분 분량으로 18부작인지 이해가 잘 안된다. 



3.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구린 캐릭터

솔직히 좀 심하다. 

그래도 작가 이름값이 있는데 왜 이리 캐릭터가 구리단말인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는데 정작 여성 캐릭터들도 구리고

그나마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느껴지는게 오양촌(배성우)인데 사실 오양촌도 경찰이 나오는 작품에서 수십번은 본 듯한 굉장히 전형적인 캐릭터이긴하다.(물론 다른 캐릭터는 전형적이면서도 구리니 오양촌 승) 

정유미 팬으로써 한정오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안할 수 없는데.. 그냥 정유미 필모 중 최악의 캐릭터로 선정하고 싶다는 말로 평을 대신한다. 


더 불만인 것은 조연들이다. 

솔직히 내가 꿈꾼 라이브는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와 같은 드라마였다. 

무슨 뜻이냐하면 주연의 비중이 줄더라도 조연들의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런 드라마를 기대했었다. 그런 드라마가 아니면 제목을 굳이 '라이브'로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보니 강남일(이시언)같은 그나마 조연 중에 비중있는 캐릭터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드라마였다. 

강남일은 특색은 뚜렷한 캐릭터다. 집의 아이가 많아서 경찰월급만으로는 힘들어 아내가 피자가게를 열었다는 (조금 의아한 구석이 있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리고 경찰의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극 중 강남일을 질타하는 장면 중에 맨날 딱지만 끊고 범인은 안잡으러 다닌다고 하는 대사가 있었는데 솔직히 좀 의아했다. 물론 일의 경중이 있겠지만 딱지끊는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란 말인가? 섬세하지 못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좀 더 이해안가는 것은 극의 후반부에 딱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는 점이다. 불법주차된 차들 때문에 다친 사람을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쳐버리는 에피소드. 그 뒷이야기로 불법주차차량들 딱지떼러 가는 씬이 있다. -강남일 원샷도 잡고, 대사도 있는 걸로 봐서 제작진도 의식하긴 했던 듯- 이 장면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강남일이 비록 위험한 일 피하고 딱지나 끊고 다니는 놈팽이 기질이 있지만, 이왕 딱지 끊는거 그렇게 위급상황시 지연이 생길 수 있는 지역 위주로 다니고 있었고, 그런 딱지덕분에 관련 지역 불법주차 차량이 줄었고,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였다면 강남일의 캐릭터는 좀 더 입체적이었을 것이고, 내내 피해사건만 보던 시청자들의 피로감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전개할 수 없었던 이유는 뒤에서 말하겠지만 가학적 신파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의미를 알 수 없는 러브라인

라이브에 러브라인이 등장하면 안될 이유는 없다.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무차별적인 러브라인때문에 멜로 외에는 러브라인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은 듯한데, 얼핏 기억하기론 영화 와일드 카드 대사에서 경찰이 모든 직업 중 사내 부부 1등이라는 대사도 있었고, 진지한 모습이 많은 경찰 드라마 특성상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 충분히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이브의 러브라인은 의아한 점이 많다.

왜 굳이 삼각관계여야 할까? 

라이브가 러브라인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은 납득이 간다. 그렇다면 그냥 이광수와 정유미 사이의 러브라인만 다뤘으면 어땠을까? 어설프게 묘사할거면서 왜 굳이 최명호(신동욱)캐릭터를 삼각관계에 끼워넣었을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었어야지 이렇게 흐지부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조연 캐릭터 활용이 부족한 또 하나의 사례이다. 

(솔직히 염상수-한정오 커플도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냥 넘어가자)



5. 입에 떠넣어주는 걸로 부족해서 본인이 씹고 소화까지 시켜 주는 촌스러운 대사들. 

'라이브'가 경찰들의 권익을 생각하는 드라마인 것은 알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문제점과 원인들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대사들은 정말이지 시대에 안맞게 촌스럽다. 

솔직히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라이브'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냥 대사로 읊으면서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좋은 에피소드에 엮어서 진한 여운으로 마음 속에 남겨주는 일일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문서적인 대사가 튀어나올 때마다 극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져버린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트위터에 이런 글이 있다. 


-영화사 시나리오 테이블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알기 쉽고 친절하게 풀어야 해" 그런 다음 덧붙인다. "관객은 바보니까!" 부디 쉽고 친절한 드라마를 경멸해주기 바란다. 


그래도 노희경이라면 국내에서 상당히 이름값 높은 작가인데, 이렇게 안일한 방식으로 읊어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실망했다. 혹시나 시청자가 놓칠까봐 통계치를 읊는 대사가 아니라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시청자들의 안목도 높여주는 것이 노희경 급의 작가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6. 단순한 선/악 구조와 가학적 신파. 

가장 중요한 얘기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라이브'는 정말 보기싫은 드라마다. 등장하는 범죄사례들이 정말 지독하게 끔찍해서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짐 한덩어리를 얹어주는데 그 때마다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은 때가 참 많았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억지가 아니다. 조사도 장기간했다는 말을 들었고, 극단적인 설정들 자체가 실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여담이지만 요즘 작품들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설정을 자유롭게 쓰는 듯한 느낌도 없지않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을 싸이코패스나 정상인이라고 보기 힘든 사람만 반복해서 등장시키는 것(정확히 그런 사건 위주로 선택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유감이다. 경찰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오양촌을 배신하고 도박한 경찰이나 안장미에게 억울한 징계를 내린 경찰들 역시 철저한 악으로 그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각본이 다분히 의도적이고, 시청자를 설득하는 좋지않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청자들은 반복해서 저런 얘기들을 보다보면 자연히 마음이 무거워지고 드라마를 시청하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라이브'에는 시청자 가슴 속 얹어놓은 짐을 해소할만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피땀흘려 사건을 해결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혹은 누명까지 쓰는) 상황에서 그들끼리 자축하는 모습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결국 시청자들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으로 설득을 당한다. 문서를 보고 읊는 듯한, 경찰의 환경개선을 요구하는 대사들을 반론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상대는 절대악이니까. 


'라이브'가 외치는 경찰환경개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맞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맞는 얘기를 굳이 가학적 신파를 사용해서 하느냐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드라마마저 주입식 교육을 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마치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경찰분들이 얼마나 많은 위로를 얻은지 아세요?' 

나는 경찰이 아니니 그들이 드라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라이브'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난 뒤에도 경찰분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조금의 위로나마 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여전하다. 


내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쓴 이유는 '라이브'가 좋은 의도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기대도 컸고..

만약 멜로드라마가 구렸다면 이정도까지 장문의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길게 쓴 것은 좋은 의도의 드라마가 더 좋게 만들어졌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첫번째라는 것을 말하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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