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8. 5. 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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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탁은 도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다. 그만큼 치열하게 구성한 영화라는 뜻도 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대구를 이루는 방식이 조금은 노골적이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당신의 부탁을 지지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영화가 인물을 그리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부탁에는 뚜렷하게 착한 인물과 나쁜 인물이 없다. 단역을 제외하고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보여준다. (꼼꼼한 시나리오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가령, 효진은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씨와 이해심이 깊은 사람이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의사소통하는 데는 서툴다. 사춘기에 접어든 종욱은 관점에 따라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될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라스트 씬만큼은 확실하게 종욱의 따뜻한 면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마찬가지인데, 심지어 효진에게 종욱을 맡기는 삼촌마저 자신이 해야할 최소한의 도리는 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으니 이 영화의 캐릭터작법이 어떤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효진은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지 못하는 타입의 사람이다.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을 때조차도 그녀의 진정한 아픔을 마주하지 못한다. 

종욱은 아픔을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아픔을 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건 효진처럼 외면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해봐야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어색하고 낯설지만,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효진은 종욱을 통해 사별한 남편 경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종욱은 효진을 통해 자신을 돌봐주던 엄마를 찾아가 상처를 아물수 있게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당신의 부탁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엄마'라는 키워드일 것이다. 관객들은 '종욱은 효진을 엄마로 받아들일 것인가?', '종욱은 친엄마를 찾을 것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따라가며 영화를 관람하게 된다.


종욱이 찾는 엄마는 사실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번째 질문은 자연스레 '종욱은 3명의 엄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로 바뀌게 된다. 원치않는 임신을 한 주미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인 종욱은 주미가 사실은 아이를 입양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자신이 키우겠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게 된다. 그의 주장은 친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키워진 그의 경험으로 설득력을 얻지만 친엄마가 아닌 효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모습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왜 효진을 엄마라 부르지 않느냐는 주미의 질문에 종욱은 결국 효진과 자신 사이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효진을 언젠가 엄마라 부르게 될 것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마치 효진이 상희에게 싸간 김치처럼 '짜지만 익으면 맛있을' 그런 관계였던 것이다. 


영화는 끝내 종욱이 효진을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로를 도우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장면을 통해 함께 잘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약간의 사족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종욱과 옛 엄마의 재회 장면을 마지막에 보여줌으로써 결국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시간이며, 효진과 종욱도 시간이 흐르면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될 것이라 믿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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