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두근두근 내인생'이라는 책으로 김애란 작가를 알게되었는데 워낙 괜찮게 읽었던 책이라 눈여겨 보고 있었죠 ㅎㅎ 그러다 한 3년전 쯤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구경갔는데 거기에서 '달려라, 아비'를 발견하고 득템했었죠!! ㅎㅎ 소소한 헌책방의 재미를 느끼며 구입한건데... 정작 구입만하고 책은 읽지 못한채 방치되어있다가... 3년만에!! 읽었습니다 ㅎㅎ
달려라 아비는 김애란 작가의 첫번째 책입니다. 단편소설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책과 동명의 작품 '달려라 아비'부터 김애란 작가의 등단 작품 '노크하지 않는 집'까지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애란 소설에는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새롭게 등단하는 현대 소설가들에게 꽤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한데 김애란 소설은 다른 작가에 비해 더욱 이러한 특징이 돋보입니다. 흡사 박민규가 떠오르기도 하구요. 그 재기발랄함은 이를 테면 이러한 것들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리를 잘라줬다. 딱히 기술이 좋은 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이발하는 걸 매우 좋아했다. 아버지는 서툰 솜씨로 끙끙대며, 한 시간이 넘게 내 머리를 자르곤 했다. 덕분에 나는 몇년째 똑같은 모양의 머리를 하고 다녀야 했다. 아버지는 "부자끼리 정답고 얼마나 좋으냐"고 했지만 사실 돈을 아끼려고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는 공책만한 거울이 달린 벽 앞에 나를 앉혀두고 정성스레 이발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군대에서 이발병이었다며 늘 자랑하곤 했다. 나는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아버지가 어떻게 이발병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했지만, 군말없이 아버지에게 머리를 맡겼다. 머리를 깎는 동안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열시가 넘어서야 집에 왔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에 껌처럼 붙어 머리를 잘라달라 졸랐다. 아버지는 나를 이상하게 내려보더니, "자꾸 짜증나게 왜 그러냐"고 했다. 나는 "부자끼리 정답고 얼마냐 좋냐"고 했다. 아버지는 잠시 갈등하다가 점퍼를 옷걸이에 건 뒤, "알았다"고 했다. p.169 '누가 함부로 해변에서 불꽃놀이를 하는가' 중에서
김애란 소설은 무척이나 재기발랄합니다만 그렇다고 마냥 재기발랄함에만 무게를 두지는 않습니다. 그녀의 첫 장편 '두근두근 내인생'에선 오히려 재기발랄함에 좀 더 신경을 썼을지 모르지만 '달려라 아비'는 철학적인 느낌이 더 짙습니다. 주로 현대사회의 특징들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이것은 '달려라 아비' 속 작품 전체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이 없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달려라 아비'속 작품들은 철학적이고 꽤나 난해한 작품들도 있고, 비교적 쉬운 작품들도 있지만 읽기 어려운 작품은 없습니다. 초창기 작품들인 이 책을 봐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느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려라 아비 - 침이 고인다 - 장편 두근두근 내인생 - 비행운 그리고 이상 문학상 대상 침묵의 미래까지 이어지는 김애란 소설의 발달과정도 궁금하고 흥미롭네요. 조만간 찾아서 읽어봐야할거 같습니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p.9 '달려라 아비' 중에서
형은 매일 [과학동아]를 보며,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곤 했다. 형은 나보다 세살이 많았다. 형은 초등학교 때, 과학경시대회에서 만든 고무동력기가 일등을 먹은 이후, 자신에게 과학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형의 수상이 단지 시간에 의한 것, 즉 추락시간이 남들 비행시간보다 길었던 덕분에 이뤄진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형의 비행기는 한번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운동장에 떨어졌다. 물론 보통 비행기였다면, 하늘로 띄워진 즉시 고꾸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형의 비행기는 날아오르는 과정에서 꼬리 부분이 잘못된 탓에, 곧바로 추락하지 않고 한참을 빙글빙글 돌며 낙하했다. 하늘을 아름답게 선회하던 수십개의 비행기들이 운동장에 모두 착륙했을 때도, 형의 비행기는 여전히 빙글빙글돌며 '미친 듯이' 추락중이었다. 형이 트로피를 안고 활쫙 웃었을 때 전교생이 치던 그 어정쩡한 박수를 나는 기억한다. p.66 '스카이 콩콩' 중에서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도시락을 혼자 먹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것의 고통은 내가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인 것을 모두가 '보고'있다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다. p.131 '영원한 화자' 중에서
그 때 당신과 나는 어렸고, 땡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를 걸으며 지하철역을 찾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흔한 우스갯소리조차 하지 않는 나의 눈치를 보고 있던 그는 갑자기 내게 게임을 하자고 했다. 종목은 '무엇무엇 했으면 좋겠다' 놀이. 내가 그ㅔㄱ ㅜ머냐고 묻자, 그는 그냥 하고 싶은 걸 얘기하면 되는 거라고 말했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지쳐있던 내가 그러자고 하자 그는 갑자기 신이 나서 말했다.
' 더이상 욕망이 없는 사람이 지는거다?'
그는 우선 담뱃값이 안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하루용돈이 이만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략)
한참 후 그는 네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참 후 나도 네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참 후 그는 너와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참 후 나도 너와 잘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머리 위로는 흉조처럼 지하철이 긴 선을 그으며 지나가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당신은 너와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p.133 '영원한 화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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