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2022. 10. 10. 05:20
반응형

탄탄한 출연진에 웰메이드 느낌 물씬 나는 시놉시스.. 오래 전부터 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마침 넷플릭스에 추가되어서 겸사겸사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1화부터 적지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청자와의 신뢰가 없는 드라마라는 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1화의 중요성... 두말하면 입아프다. 엔딩의 중요성도 모두가 알 것이다. 그치만 그게 시청자들을 낚고 우롱하면서까지 이뤄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닐진데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도 한참 바꼈다. 꾸준히 낚시하는건 물론이고 매번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원하는데서 못끊고 꽤 많은 분량을 스킵한 다음 결정적인 순간에 엔딩. 그 후 다음 회차에 스킵한 부분을 풀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연출하고 있다. 정말 근본없는 방식이다. 결정적 필살기로 1~2번 써도 별로인 방식을 꾸준히 쓰고 있으니 역량 부족이라고 말할 수 밖에. 

 

낚시를 너그러이 넘어간다고 해도 솔직히 그냥 이야기가 별로이다. 

소재가 자극적인 것? 뭐 마음에 안들지만 OK! 예술성 높은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자극적인 소재들이 많다. 물론 자극적인 부분을 잔뜩 덕지덕지 엮어놓은 것과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또 다른 문제점은 과거사에 너무 얽혀있다는 것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플래시백도 별로였고

(대체 정진영이 유리컵과 창문 깨는 플래시백은 몇 번이나 나오는게냐.. 못해도 4번은 나왔을듯)

전반적인 이야기의 동력이 부모님의 과거사 or 은주 부부의 문제인데(은희의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약하다) 순전히 정보의 비대칭에서 발생하는 미스터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보니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추고 또 시청자가 정보를 곡해해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자연히 이야기가 흥미롭지가 않고 그냥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제작진이 시청자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방식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는데 시청자들은 의도적으로 편집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가정사를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되버리는 것이다. 이는 이야기에 몰입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고 몰입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캐릭터도 좋다고는 못하겠다. 그나마 가장 좋은 캐릭터가 은희(한예리)이고 은주와 막내는 너무 전형적인 맏이와 막내 캐릭터이다. 전형적인 것도 전형적인거지만 은주 캐릭터는 소시오패스 급으로 감정적 능력이 부족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막내 캐릭터는 비중도 적고 이렇다할 서사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서 극의 후반부에서 천하의 쓰레기로 만들어버린다. 

캐릭터를 논하기 전에 전반적으로 인물들이 날 서있고, 이기적이다. 어떤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작가님의 선한 마음이 작품 밖까지 전해지는데 이 작품은 솔직히 말해서... 이상한 사람이 만든 드라마같다. 인물들의 액션 리액션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거기다가 작가는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한테 너무나도 잔인하다. 전반부의 막장스러운 사건들은 좋게 생각해서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막장스러운 사건들이 어느정도 일단락된 후반부에 들어서면 벌어지는 사건들마다 인물들에게 너무 잔인하고 행동마저 논리적이지가 않다. 

작가는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을 은주 시어머니만도 생각을 안하는것 같다. 은주 시어머니는 짧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사죄라도 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16화까지 사건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무너져야만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극적인 소재가 어느정도 해결된 시점에서는 극의 긴장도가 좀 낮아지더라도 역경을 이겨낸 가족의 회복이야기가 펼쳐졌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캐릭터를 망치고 학대하면서까지 얻는 억지 긴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긴장감이 중요하면 스릴러를 만들어야지 왜 가족이야기를 하나.. 모순이다. 

 

그리고 드라마의 목표는 시청자를 속이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가 이야기의 전개를 예측한다고 해서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왜 흔히 명작은 그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찾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 드라마는 반대의 경우로 기를 쓰고 시청자들을 속이려고 하면서 드라마의 퀄리티를 다 깎아먹는 케이스다. 

 

이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 비스무리한건 "남보다도 가족을 더 모른다"이다. 많은 경우 맞는 말일 것이다. 근데 이 드라마의 사건들은 너무나 막장스럽고 스케일이 커서 극의 주제를 훼손해버린다. 거기다가 일련의 사건 이후의 논리적 귀결이 이상한데 "가족인데 남보다도 모르니 이제부터 비밀이 없어야한다!"는 식의 흐름이 잠깐 등장한다. 나는 이 방향이 너무나도 공감되지 않았다. 가족은 논리적으로 서로 잘알고 잘맞아서 가족이 아니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모르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가족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가족을 생각했을 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뒤에 은주가 가족간의 비밀을 모른체 해주어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긴한다. 뭐 솔직히 말해서 이 드라마는 사건만 있을뿐 가족에 관한 고찰은 특별히 못느끼겠다)

 

그리고 왜 이리 앵무새처럼 가족인데 서로를 더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일까.. 가족에게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왜 이 드라마는 다루지 않을까? 간간히 나오는 은희의 내레이션은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도록 만들기 보다는 그냥 작가가 가족에 대한 고찰을 별로 안했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 신랄하게 까버렸는데 장점도 있긴 있다.

캐스팅이 너무나도 훌륭하다. 톱스타까진 아니지만 참 연기잘하는 알짜 배우들로 기가 막히게 캐스팅을 했다. 김지석은 가장 많이 맡았던 류의 캐릭터를 역시나 안정적으로 소화했고, 추자현은 연기는 좋았지만 캐릭터가 별로였다. 이 드라마는 가족들의 웃음을 조금 더 많이 담을 필요가 있었다. 한예리는 영화보다 드라마에서의 연기가 조금 쳐진다는 느낌이었지만 이 드라마에선 상당히 따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의 리듬과 템포에 적응을 한듯 좋은 연기!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압권은 정진영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본 결정적 원인은 한얘리였지만 가장 큰 기쁨은 정진영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정진영 연기 잘하는건 누구나 다 알지만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를 꼽을 때 연기력에 비해서 굉장히 언급이 적은 배우 중 하나가 정진영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정진영 배우에게 익숙한건 좀 쎈 캐릭터들이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선 정진영이란 배우안에서 저렇게 순진무구하고도 아이같은 모습이 숨어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진영은 화이트 칼라든 블루 칼라든 유한 캐릭터이든 강한 캐릭터이든 모두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기나긴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건 오직 정진영 배우 때문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8화 중간에 강변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며 <슬픈 인연>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엄청난 노래 실력은 아니었지만 진한 감정을 담아 나직히 읊조리듯이 부르는 그 노래는 이 드라마의 백미라고 칭하고 싶을 정도였다. 열창했다면 절대 살릴 수 없는 감정들.. 수많은 세월 속에서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응축되어있는 목소리는 유일하게 마음 속의 울림을 주는 장면이었다. 아쉬운 건 이 드라마가 흥하지 않아서 그 흔한 유투브 클립하나 없다는 것.. ㅠㅠ 

 

결국.. 이 드라마는 회차를 좀 늘려서 KBS 주말드라마로 가는게 맞았을 것 같다. 이 드라마가 품기엔 너무 넘치는 배우들이다. 

반응형
Posted by O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