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진담
얼마 전, 음악을 소개하는 음성 콘텐츠를 듣고 있었는데 음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취향과 맞지않는 노래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너무 성급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앨범단위로 들었던 사람은 공감할지도 모르는 이야기 하나. 예전엔 신보가 나오고 테이프 혹은 cdp로 듣다보면 꼭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빠지게 되는 트랙들이 있었다. 그러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그 트랙을 반복해서 듣게 되는데 신기한 것은 한참을 그렇게 듣다가 다시 앨범 전체를 들을 때면 묘하게 그 트랙이 듣기 싫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신기한 것은 앨범을 돌릴 때면 존재감 없이 지나가는 곡들이 이상하게 귀에 확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인데 수십 번은 들은 앨범인데 왜 내가 이 노래를 흘려 들었을까 생각하고 있자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그 노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좋아하게 된 노래는 보통 질리는 경우가 드물다. 아무리 가사집을 보며 열심히 들어도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면, 오직 시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음악에 대한 얘기를 길게 했지만 비단 음악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어떤 것은 첫 인상은 너무나 좋았지만 알아갈수록 별로인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또 어떤 것은 보기와 다르게 시간을 두고 볼수록 진국인 것들이 있다. 그러니 어떤 음악을 듣자마자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에 대해 알아간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저 사람은 자신의 취향에 대한 확신이 참 크구나 생각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취향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절대적인 지위에 오른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예전에도 취향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되었지만 어느 순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라는 밈이 퍼지며 취향저격이라는 단어가 미디어를 오르내렸고, 그게 더 발전되어 “최애”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취향과 최애에 대해 지적하면 몰상식한 사람이 되었고 취향이 없다는 것은, 조금은 부끄럽고 촌스러운 일이 되었다.
물론 취향의 존중이야 너무 당연한 것이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 반작용으로 생긴 취향에 대한 강박과 확신의 부작용이 점점 커지지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자신이 무지한 분야에 대해서도 쉽사리 자신의 취향을 정해버리는 것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산미있는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도 그런 사람들을 몇 번 보았는데 재밌는건 한사코 산미있는 커피를 거부하던 사람들이 막상 마셔보면 어느 정도 산미가 있는 커피가 맛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적은 경험으로 자신의 취향을 쉽게 일반화해버린 사례일 것이다(물론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산미있는 커피가 취향이라는 결론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때때로 자신의 취향에 대한 과한 확신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유용한 것이 자신의 취향을 유예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얕게 접해본 것에서 호오가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곧바로 취향으로 확정 짓기보다는 유예하면서 경험을 두텁게 쌓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얻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나의 경우엔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알아갈수록 취향이 확고해지는 것보다 점점 옅어지고 없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내 성향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을텐데, 내 취향에 맞는 특정한 것을 주로 소비하고 즐기기보다는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것을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이론적으로는 그게 더 좋으니까!
그래서 최근에는 오히려 취향이라는 단어를 굳이 잘 쓰지않는 것 같다. 잘 알면 잘 알아서, 모르면 모르기 때문에.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이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내 취향일 뿐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