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배드/베터 콜 사울 - 걸작, 그리고 또 걸작.
브레이킹 배드
설정부터가 죽여준다. 고등학교 화학선생님이 암 선고를 받으면서 가족을 위해 마약 제조에 손을 댄다는 설정. 선생님이라는 일종의 선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악의 상징같은 마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의도는 또 더 없이 선하나 마약을 만들고 파는 과정에서 그 의도는 점점 뿌옇게 흐려진다.
좋은 시놉시스도 중요하지만 브레이킹 배드가 걸작이라고 칭송 받을 수 있는 것은 설정 못지않게 내실도 탄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그럴싸한 설정에 낚여 속이 텅 빈 이야기를 수도 없이 보지않았는가.
브레이킹 배드가 가장 훌륭하다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치열한 캐릭터 분석이다.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 캐릭터까지 저마다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행동들을 한다. 물론 스카일러와 관련하여 비판적인 의견도 적지않지만 대부분이 월터 화이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하여 이야기를 감정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를 보는 동안 스카일러에게 짜증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드라마가 끝이 나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스카일러 또한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는걸 알 수 있다. 그나마 미완의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것이 마리 슈레이더 정도? 그치만 조연급 중에서도 비중이 적은 캐릭터이니 별다른 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베터 콜 사울
브레이킹 배드를 보면서 이미 베터 콜 사울이라는 프리퀄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사울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눈여겨 볼 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런 사실을 모른 채로 드라마를 보았다면?! 사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것에 굉장한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지..
그치만 막상 베터 콜 사울을 보기 시작하니까 확실히 조연급 캐릭터를 주연으로 끌어올렸을 때의 한계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분명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브레이킹 배드처럼 주인공을 설명하는 강력한 설정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척은 스카일러와 비교도 안되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인물인데 스카일러와 다르게 전개상 꼭 필요한 인물도 아니고 보다 더 현실적이지 못한 인물이어서 시즌 3가 끝이나고서야 척이 퇴장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미의 근간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설정인것은 맞지만 시즌 2 중반부에 퇴장해주셨으면 훨씬 편하게 봤을 것 같다. 시즌 3의 저조한 시청률은 척 때문일 것이다..
브레이킹 배드를 볼 때면 때때로 이야기가 품고 있는 다양한 함의들이 꽤 무거워보인다는 느낌을 받은 반면 베터 콜 사울은 한결 가볍다. 상대적으로 전개도 막힘없이 진행되는 편이어서 브레이킹 배드보다 베터 콜 사울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것은 킴 웩슬러라는 캐릭터이다. 상대적으로 제시보다 월터의 비중이 컸던 브레이킹 배드에 비해 베터 콜 사울은 지미와 킴의 밸런스가 굉장히 훌륭하다. 또한 두 캐릭터의 시너지 역시 훌륭하다. 지미와 킴은 얼핏 보기엔 정반대의 캐릭터 같아 보이는데 시즌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실 두 사람은 굉장히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베터 콜 사울을 지미와 킴의 러브스토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달라서 끌리는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알고보면 서로 비슷하기에 끌린 이야기였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끝없이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진행되던 브레이킹 배드와는 달리 베터 콜 사울은 상대적으로 심플하게 나쁜 일들을 계속 벌인다. 물론 선한 의도를 가진 나쁜 일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덜 고민스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베터 콜 사울이다. 그러나 시즌6의 말미에 이르면 진 태커빅이라는 이름의, 삶의 생기가 모조리 사라진 지미를 만날 수 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나쁜 일을 하며 삶의 동력을 만들어보려 하지만 결국 체포되고 만다.
이미 킴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멀어졌던 지미였지만 자신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86년 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킴과 '일종의 화해'를 한다. 그리고 복역중인 지미를 면회온 킴과의 라스트 씬은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의 큰 주제에 들어맞으면서도 더 없이 품격있는 마무리라고 할 수있다.
결론적으로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은 서로 대조되면서도 상호보완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된 탁월한 한쌍의 작품이라는 걸 시즌 6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베터 콜 사울은 여러 측면에서 브레이킹 배드보다 발전한 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약하기도 했고, 이러나저러나 두 작품 모두 서로 다르게 훌륭해서 더욱 좋았다.
끝으로 이렇게 장대하고도 훌륭한 이야기가 사전에 치밀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제작 과정에 난관이 있어서 방향을 틀어야하기도 했고, 또 촬영본을 보니 배우가 너무 훌륭해서(제시, 킴)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는 걸 보며 좌절감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긴 시간이었지만 상상치못한 경지의 작품을 만나 참 행복했다. 머지않아 다시 정주행하는 순간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