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 자서전 - My life in Red and White

아르센 벵거의 자서전.
벵거 같이 인생의 굴곡이 많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자서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책이 얇다. 대략 300페이지 정도의 책인데 그나마도 벵거의 사진과 기록들이 앞 뒤로 꽤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실제 내용은 240 페이지 남짓이니 하루 이틀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책을 벵거의 자세한 에피소드를 기대하고 접근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감독 시절 벵거는 상당히 신중하면서도 직접적인 말을 아끼는 타입의 감독이었고,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도 실망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으나 책을 덮고 나서는 이 책이야말로 가장 벵거다운 자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벵거는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이 확고한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이 벵거가 감독으로서 지녔던 철학과 직업윤리를 담은, 일종의 경영서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대중을 만족시킬만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완독할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의 구성은 벵거가 어린 시절 공을 차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스날에서 물러난 이후까지 벵거의 인생 전체에서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축구를 통해 그가 배웠던 것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것의 집약체가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 실려있는데, 벵거는 '감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정리하고 있다. 그 내용을 짧게 옮기며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생각한다. 감독이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그에 대한 분명한 시각과 그걸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아는 사람이다.
감독은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감독의 계획을 선수들이 지지하게끔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은 일을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나 결정, 압박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어려운 순간에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상황을 큰 그림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트레스에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감독은 강한 확신을 갖고 자신의 행동이나 가치관, 발언들을 통해 자신의 팀과 선수들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감독은 반드시 선수들의 존중과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은 경험이 붖고한 어린 선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때로는 계획을 바꿀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어린 선수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감독은 또한 자기 팀 선수들을 사랑하고 연민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실수나 단점들을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은 늘 최고와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나서서, 작고 세세한 부분도 무시하지 않으며 모든 선수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선수들로부터 최선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요구하고 그들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감독은 최고의 선수도 늘 100%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선수들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감독은 축구가 사회와 어린이들에게 주는 영향력과 힘, 책임감, 매력에 대해, 때로는 축구가 할 수 있는 공헌에 대해 아는 사람이다. 감독이란 축구가 그 힘에 필적할 만큼 최대한 아름다울 수 있도록, 그리고 순수한 축구의 예술을 보여 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갈 의무를 가진 사람이다.